[미래읽기]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미래의 소비

정치

뉴스1,

2024년 5월 07일, 오후 07:33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해외여행 중에는 특정 상품군이 그 나라에 유통되지 않거나, 가게가 일찍 문을 닫아서 돈이 있어도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거나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라도 휴대전화만 있으면 빠르고, 편하게,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물건을 구매하고 쉽게 받을 수 있다. 해외직구도 보편화되어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진 소비 천국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때때로 신기할 만큼 싼 가격 뒤에 숨겨진 비용이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 가격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환경오염을 개의치 않는 나라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내가 몇천 원 지불하는 것으로 개도국의 환경을 파괴하고 누군가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용인할 권리를 누리는 것이 정당하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때다.

현재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가만히 살펴보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손상, 환경오염 등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다양한 현상은 자원의 과도한 사용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물질 소비 속도가 생산-소비 후 폐기되는 선형경제 시스템과 결합하는 경우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활동 또한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다. 2019년 엘렌 맥아더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전체 온실가스배출량 중 제품생산으로 발생하는 배출량이 45%를 차지하며, 이 비중은 제품 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 계속 커지게 된다. 따라서 물질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수도꼭지를 잠가야' 기후변화, 환경오염, 생물다양성, 자원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속 가능 발전 목표 12,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은 자원의 효율적 사용과 기업의 책임 있는 생산을 요구한다. 생산자의 참여와 정부의 역할과 같이 가시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하위 지표가 눈에 띄지만, 결국 물질 사용의 끝단에 소비자가 있으므로 소비자의 역할이 핵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재의 소비문화가 형성된 데에는 과연 '소비자'와 '생산자' 중에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생산자는 수요가 있어서 생산한다고 할 것이고 소비자는 생산하는 곳이 있으니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책임인지를 밝히는 것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을 찾는 것이다. 진부한 대안이겠지만, 굳어진 관성을 깨고 행동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는 여건(규제)이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하며, 변화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인센티브가 제공되어야 한다.

최근 유럽은 제품 전 주기에 걸친 환경·인권 등 지속 가능성 정보가 투명하게 제공되는 디지털제품여권을 제도화했고, 배터리여권의 경우 이미 많은 나라가 참여하고 있어 제도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을 촉진하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이와 맞물려 그린워싱을 방지하는 제도 또한 정비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친환경 소비가 활성화된다는 가정하에 제품의 환경발자국 등의 정보가 제품 구매에 중요한 결정요소가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변화로 인한 효과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 방식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주체는 이익을 내는 활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조업의 경우 현재 신제품 판매 단계에 이윤이 집중돼 있다. 일부 렌탈 서비스와 유지·보수에서도 이익이 발생하지만, 신제품 판매에 비하면 적다. 선형경제의 시작점인 생산 단계에 집중돼 있는 이윤 발생 구조가 점차 소비, 폐기를 아우르는 제품 전주기로 분산이 되어야, 즉 (공유를 통한) 사용, 재사용, 재정비, 재활용 등 제품 전 주기에 걸쳐 이윤이 더 많이 창출되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수록 이득인 구조에서 적게 생산하여도 제품이 더 많이 활용될수록 이득인 순환경제 시스템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인센티브와 적절한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할 때 기본적으로 가성비를 고려하지만, 그 외에도 구매 편의성과 생산자와 유통업체의 신뢰성을 고려하게 된다. 즉 바쁜 소비자가 신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제품 공유, 재사용, 재정비, 재활용과 같은 순환 소비 활동을 선호할 수 있으려면 그 과정이 쉽고 믿을 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다양한 제품군과 라이프사이클(즉, 신제품과 폐기 사이 단계)을 다루는 믿을만한 순환유통 전문 업체가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품질 보증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미 의류, 전자·전기제품 등을 수거하는 서비스가 일부 존재하기는 하나 더 다양한 업체가 생겨나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고품질의 재사용 상품을 판매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순환 소비가 보편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 전에 순환 경제를 공교육 과정 안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순환 경제 교육의 첫 단계로 우리가 일상 소비 활동에서 지불하는 금액이 실제로 어떤 비용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이 어떤 나라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원이 소모되며 어떤 오염물질이 발생하는지, 인권은 보호되는지, 사용 후에는 제품이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알게 된다면 미래의 소비자가 책임 있는 소비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비로소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자원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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