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잡은 '경제공동체' 법리, 文에 부메랑…"정치보복 비극"

사회

이데일리,

2025년 4월 24일, 오후 04:52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검찰이 뇌물수수 혐의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전격 기소했다.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뇌물을 받은 건 아니지만, 검찰은 전 사위 서모 씨에게 지급된 급여 등에 대해 ‘경제공동체’ 법리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법조계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적폐청산 수사로 정립된 경제공동체 개념에 본인이 발목 잡힌 격이라며 ‘정치보복의 비극’이란 의견이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이데일리DB)
전주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배상윤)는 2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상직 전 의원에게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수수한 건 아니다. 2018년 3월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 전 의원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에 임명됐다. 이후 같은 해 7월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의 사위인 서씨가 타이이스타젯 상무로 채용됐다. 당시 서씨는 항공 관련 경력이 전무한 상태였다. 서씨는 1년8개월간 타이이스타젯 상무로 일하며 급여와 주거비 명목으로 약 2억1700만원 상당을 받았다.

이전까지 문 전 대통령은 딸 다혜 씨 부부의 생계비를 일부 지원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씨가 타이이스타젯에 취업하면서 생계비 지원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곧 ‘경제공동체’인 문 전 대통령의 이익으로, 뇌물로 볼 수 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경제공동체 법리는 국정농단 수사 때 처음 등장했다. 경제공동체 법리는 형법상 명확히 규정된 개념은 아니다. 국정농단을 수사하던 당시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간 공범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새롭게 제시한 논리다. 쉽게 말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라면, 한쪽이 받은 뇌물도 다른 쪽이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법리로 실제 직접적인 뇌물을 받지는 않았지만, 최씨가 삼성 등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각종 특혜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수수한 걸로 인정됐다.

박근혜(왼쪽)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이데일리DB)
문 전 대통령의 경우 박 전 대통령 때와 달리 친족 관계라 경제공동체 성립이 더 쉬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문 전 대통령이 사위 취업 전까지 경제적 혜택을 제공했다가, 취업 이후로 끊었다고 한다면 경제공동체 성립이 가능해 보인다”며 “다만 곽상도 전 의원의 경우에는 50억 클럽 관련해 아들이 결혼 후 독립해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적이 있어서 향후 재판에서 딸 부부의 ‘경제적 독립’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뇌물수수의 핵심인 직무관련성에 대해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 법리가 사용됐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 뇌물 사건에서 국회의원 공천이 대통령 직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봤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이 문 전 대통령에게 향후 공천 등 정치적 활동에서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공공기관장 임명 및 2020년 4월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한 면직 처리 △이스타항공의 방북 사업 지속성을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했던 점 등 이 모든 것이 대통령 직무에 속한다고도 부연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 시절 단행된 적폐청산 수사 때 확립된 법리가 문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정치보복의 비극’이라며 국가적으로 안타깝다는 반응도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 단행한 적폐청산이 부메랑으로 결국엔 돌아온 것”이라며 “전직 대통령들이 연이어 사법 판단을 받는 게 국가적 비극이다. 이 고리가 끊어질 수 있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현재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로 진영의 다툼이 심해지고 있고, 이로 인해 국가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번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소도 유·무죄를 떠나 그 자체로 비극적인 일”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