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협약 파기 해놓고, “주민수용성”만 외치는 하남시

사회

이데일리,

2025년 4월 25일, 오후 06:49

[하남=이데일리 황영민 기자]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 일대에 공급하는 마지막 관문인 ‘동서울변전소 증설사업’의 표류가 길어지며 하남시 책임론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2023년 10월 이현재 하남시장과 김태옥 한전 부사장이 ‘동서울변전소 증설사업’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해당 협약서에는 ‘하남시는 본 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향후 지역주민과 이해충돌이 발생할 경우 사업추진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명시됐지만, 하남시는 감일지구 주민 반발이 심해지자 이듬해 8월 일방적으로 협약을 파기했다.(사진=하남시)
해당 사업에 대한 주민 반발이 심해지자 이현재 현 하남시장이 한국전력(015760)공사와 맺은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도 모자라 행정심판 패소에도 관련 인허가를 지연하며 관련 책임을 모두 한전에만 떠넘기면서다.

◇하남시의 일방적 협약 파기, 배경은?

25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하남시와 한전은 지난 2023년 10월 24일 ‘500kV 동해안~동서울 HVDC 건설사업’ 관련 상호 이해증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협약에 따라 하남시는 동서울변전소 구내 500kV HVDC 송전선로 신설 및 옥내화 공사 등에 대한 각종 인허가를 신속 처리하고, 한전은 변전소 주변 지역주민과 하남시 지역발전을 위한 주민 편익시설 및 송배전 선로 지중화 등 특별지원사업을 시행키로 했다.

특히 ‘하남시는 본 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향후 지역주민과 이해충돌이 발생할 경우 사업추진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명시됐다. 협약서는 이현재 하남시장이 직접 자필로 서명했다.

하지만 하남시는 협약일로부터 10개월여 만인 지난해 8월 23일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과 관련해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며 한전 측에 일방적인 협약 파기를 통보했다.

이보다 앞선 같은 달 4일 한전이 신청한 345kV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건축허가·옥내화 토건공사 행위허가·옥내화 관련 전력구 정비공사 행위허가와 500kV 동서울 변환소 본관 부지 철거공사허가 등 4건의 허가신청을 불허한 뒤 협약마저 깬 것이다.

이후 한전은 동서울변전소 관련 인허가 불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걸었고,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하남시는 행정심판 결과에도 불응하고 관련 인허가를 지연하고 있다.

김호기 한전 HVDC 건설본부장이 지난 16일 하남시청 앞에서 동서울변전소 관련 인허가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독자제공)
이에 김호기 한전 HVDC 건설본부장을 시작으로 한전 임직원들이 하남시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했고, 지난 24일에는 김동철 한전 사장이 이현재 시장을 만나 담판을 시도했지만, 끝내 합의는 결렬됐다.

◇특별지원사업만 받고, 이해충돌은 나 몰라라

하남시의 어깃장에 수도권 전력 공급을 위한 국책사업이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 놓고 공전을 거듭하자 한전은 급기야 대국민 호소문까지 꺼내 들었다. 그러자 하남시도 입장문을 통해 반박에 나섰다.

하남시는 “한국전력 측에 주민수용성을 확보해달라고 수 차례 요구했다”며 “하지만 동서울변전소 이슈가 발생된 2024년 7월경부터 지금까지도 감일신도시 시민들은 동서울변전소 대규모 증설에 따른 안전 우려와 불안감을 여전히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12월 행정심판 인용 결정에 따라 시는 법과 규정에 맞게 그동안 행정절차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었으며, 이미 한국전력 측에 밝힌 바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남시가 재량권을 남용한 무책임하고 비상식적인 행정기관이라고 비판만 하는 거대 공기업 한국전력 측이 과연 해당 사업을 미래첨단산업의 핵심이자 국가경쟁력을 위한 사업으로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하남시는 또 “국가정책이 진정한 공공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정당성만큼이나 시민과의 신뢰와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한국전력 측은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시민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먼저 구해주실 것을 당부하는바”라고 인허가 지연 관련 책임을 한전 측에 고스란히 전가했다.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와 송배전선로 지중화를 비롯한 한전의 특별지원사업은 진행되지만, 일방적 협약 파기로 ‘하남시는 본 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향후 지역주민과 이해충돌이 발생할 경우 사업추진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책임에서는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입장문이다.

동서울변전소 증설사업을 위해 앞으로 남은 인허가는 현재 지연 중인 4건을 포함해 12건이 더 남아 있다. 협약을 깬 하남시 입장에서는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사업 추진을 막을 여력이 남은 셈이다.

한전은 호소문에서 “33만 하남 시민들이 매일 사용하는 모든 전기 역시 멀게는 400km 떨어진 발전소로부터 수많은 경과지역을 거쳐 모두의 대승적 이해와 협조로 공급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우리 지역에는 전력설비를 건설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모순된 태도는 일반적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