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교육 실종, 법치주의 위기 초래…인증제 필요"

사회

이데일리,

2025년 5월 23일, 오후 05:22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16년을 맞았지만, 전문가들은 되려 법학교육이 퇴보했다고 평가하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로스쿨이 사실상 변호사시험을 위한 통로로 굳어지면서, 정작 법학 이론 등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현상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대안으로 법학교육인증제도를 도입해 로스쿨 입시와 국가시험 등에 활용하자는 방안이 거론됐다.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와 전국법과대학교수회가 23일 오후 서울대에서 ‘법치주의 위기와 학부 법학 교육의 과제’ 공동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송승현 기자)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와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23일 오후 서울대에서 ‘법치주의 위기와 학부 법학교육의 과제’ 공동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학부 법학교육의 위기현황 및 발전방안을 논의하고 내달 3일 대선 이후 새로 구성될 정부에 관련 내용을 건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학부 법학교육의 발전방안’ 세션을 맡은 이원상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로스쿨 도입 이후 도외시 되는 학부 법학교육에 대한 현실을 진단했다. 로스쿨 도입 이전 209개였던 법학과 수는 지난 2023년 기준 117개로 줄었다. 또 2009년 8824명이었던 법학과 졸업생은 2023년 3470명으로 60% 넘게 감소한 상태다. 이는 로스쿨 설치 대학의 경우 기존 법학과 폐지가 법률에 따라 강제됐고, 더 이상 법조인을 위해 법학과를 선택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로스쿨 제도 시행 이전에는 매년 1만3400여명의 법학도가 대학에 입학했고, 이들이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이나 공무원 등이 됐다”며 “학부 교육을 통해 적어도 법치주의 이념을 이해하는 법학도들이 사회 곳곳에 배치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현재 로스쿨 교육은 변호사 시험 합격에 모든 것이 집중돼 법학교육이 수험적 지식 전달, 즉 주요 판례 중심의 수험 준비로 변질됐다”며 “이는 법학이라는 고유한 학문보다는 단지 변호사 시험 준비의 장이 됐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이상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로스쿨에서의 법학 기초법 교육이 비어 있는 상태로 인해 (과연 로스쿨이) 어떤 법률가를 양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위기는 곧 법치주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와 전국법과대학교수회가 23일 오후 서울대에서 ‘법치주의 위기와 학부 법학 교육의 과제’ 공동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송승현 기자)
법학 교수들은 학부 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이원상 교수는 학부 법학교육을 살리기 위해 기존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에서 더 나아가 교양 차원으로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시민 대상 맞춤형 법 교육 확대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 법교육 강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법학능력 검정시험의 도입 등을 제시했다.

이날 발제자로 참여한 안정빈 경남대 법학과 교수는 법학부 졸업과 로스쿨 편입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예를 들어 법학사와 법학석사를 동시에 소지하고 있는 경우 로스쿨 3학년에 편입할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안 교수는 “더 나아가 법학사와 법학석사 및 법학박사를 셋 다 취득한 학생들의 경우 두 학기 정도에 걸쳐 법무실습을 하는 것을 전제로 변호사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한다면 법학과 졸업생들에 대한 적절한 제도적 방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한국법학교수회 등은 학부 법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법학교육인증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법학 과목 이수에 대한 공식적 인증 제도를 신설한 뒤 이를 로스쿨 입시 또는 국가시험 등과 연계하자는 방안이다.

관련 발제를 맡은 김세준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법학교육인증제도의 도입은 학부 법학교육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 제도적 기반 위에서 법학교육의 질을 향상하는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법학은 단순 시험 준비용 실용 지식을 넘어서 학문적 기반과 공공적 역할을 갖춘 전공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