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구조 반영 못하는 시니어하우스…‘주거 공동체’ 만들어야”[ESF2025]

사회

이데일리,

2025년 6월 09일, 오전 09:11

[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홀로 사는 노인은 갈수록 많아지는데 우리나라의 주거 시설은 혈연관계의 가족 위주로 설계해 인구구조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공존하며 살 수 있는 ‘공동체 주거’ 형태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고령화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고령자들이 최대한 오래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사진=김태형 기자)
강 총괄건축가는 취약계층 건축 분야 전문가로 40년 넘게 장애인·노인을 위한 시설 개선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해왔다. 2021년 서울시 총괄건축가로 위촉돼 서울 도시계획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달 18~19일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16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첫째 날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주거 시설의 형태와 가치에 대해 발표한다.


◇“노인 위한 ‘주거 편의증진법’ 필요…주택 유형 바꿔야”

강 총괄건축가는 고령자들이 주거 공간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의 비중이 매우 커지고 있는 만큼 절대 다수를 위해 주택 관련 무장애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장애인·고령자의 접근권이 보장되는 공공·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1997년 제정됐다. 그러나 개인주택 등 주거시설과 관련해서는 이 같은 규정이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강 총괄건축가는 “독일의 경우 공공시설뿐 아니라 주택 관련해서도 접근성과 편의성을 규정하는 법이 잘 마련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는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되면 독립적인 생활을 할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들이 대부분 주택 내에 있다”며 “적재적소에 필요한 손잡이가 있어야 하고 화장실 출입문에 대한 규정 등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들에게 보조금 등 돈을 줘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사는 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근본적으로는 변화하는 인구 구조에 맞춰 주거 유형 역시 이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 총괄건축가는 “현재 대부분의 주거시설은 혈연관계의 가족을 기본 단위로 만들어져 있어서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방 하나씩을 나눠 사는 것이 기본”이라며 “그런데 이런 집에 혼자 사는 노인이 계속 늘어나 10년 뒤에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 가운데 38%가량이 혼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혼자 사는 고령자 다섯 명 중 한 명(19%)은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다. 강 총괄건축가는 “더 이상 혈연관계의 가족 단위는 유지하기 힘들어지는데 우리나라의 공동 주거지는 변화가 없어 주변과 공간·사회적으로 단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주거 유형을 바꾸지 않고 시니어 하우스, 요양원, 간호주택을 만드는 것”이라며 “가족이 돌보지 못하니 노인들끼리 따로 모아 놓게 되면서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또 다른 고려장이 된다”고 말했다. 강 총괄건축가는 “시니어 하우스 등 시설도 필요하지만 최대한 집에서 독립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주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사진=김태형 기자)
◇“비혈연관계로 형성된 공동체 주거 필요”

그는 초고령사회의 바람직한 주거 유형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비(非) 혈연관계’로 형성된 ‘공동체 주거’ 형태를 제시했다. 그는 “혈연관계의 가족처럼 일상생활을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이어갈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주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서로의 필요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생활 협동조합과 유사한 주거 또는 생활을 공유하고 공존을 위한 주거유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 총괄건축가는 “단순히 같이 공간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생활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공유 커뮤니티에서 건강 관리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면서 어르신들이 굶거나 고독하게 살아가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모든 세대가 같이 사용하기 편리한 주거모델을 위한 ‘보편적인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치매 센터가 아니라 치매 주거, 요양 센터가 아닌 요양 주거의 관점으로 시설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인간은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오래 머물다가 익숙한 곳에서 죽는 것을 소원하는 만큼 이 같은 시설을 고령자가 자립적인 생활을 최대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거주 공간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총괄건축가로 몸 담고 있는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미래 도시 계획 방향성인 ‘100년 미래도시공간을 위한 비전’ 역시 이 같은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서울시의 미래 도시 모델은 ‘수직 도시’로 초고령 사회에도 가장 좋은 모델로 노인 인구가 움직이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면서도 다양한 사회적 교류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수직 도시 안에서 거주하면서 일과 취미생활을 전부 5~10분 안에 해결하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강 총괄건축가는…

△건국대 건축공학과 학·석사 △베를린 공과대 건축과 공학박사 △건국대 건축학부 명예교수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만들기 연구소장 △서울시 총괄건축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