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냥 빚…소중한 시간 지키는 민사조정의 힘"

사회

이데일리,

2025년 6월 23일, 오전 06:01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분쟁의 시작은 종종 금전적 문제에서 비롯되지만 소송이 장기화할수록 당사자들이 잃는 것은 돈보다 더 귀중한 시간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재판과 그 준비가 아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돌려주는 것이 조정의 본질입니다.”

김보람 법무법인 현백 변호사. (사진=이영훈 기자)
22일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현백 사무실에서 만난 김보람 변호사는 민사 조정의 가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북부지방법원 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2년)과 상임조정위원장(2년)으로 활동하며 약 1000건 이상의 민사 조정 사건을 맡아 소송의 조기 종식을 위해 노력한 장본인이다.

형사 국선전담변호사로의 활동 외에도 여타 수많은 민사사건 및 형사사건 등 송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김 변호사가 상임조정위원에 지원한 이유는 소송 과정에서 의뢰인이 겪는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목도하면서다.

그는 “법정에서 승소판결을 받더라도 소송은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당사자들의 일상과 삶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결국 적절한 시기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조정은 분쟁의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해결방안이자 당사자간 자율적 분쟁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는 만큼 새로운 방식으로 법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유류분 분쟁 사례를 꼽았다. 형제들이 상속 문제로 대립하며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중 뜻밖의 인물이 조정장 분위기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조정은 법정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진정한 이해관계와 감정을 표현하고 보다 진정한 사과, 용서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이란 점을 깨달은 것도 이때다.

김 변호사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원고 측 아들이 천진난만하게 ‘나는 외삼촌 좋아하는데, 외숙모가 해주시던 음식도 생각나고 사촌형들과 연락을 못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털어놓더라”며 “허탈한 웃음과 함께 법적 다툼으로 경직된 분위기가 어느새 따듯해졌고 결국 가족관계를 회복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조정하면서 유류분의 금액과 방식 합의도 원만하게 이루어졌다”고 회상했다. 장기간 소송으로 모두에게 상처와 손해만 남길 수 있었던 시간을 조정이 되돌려준 셈이다. 그가 당사자들에게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해 왔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보람 법무법인 현백 변호사. (사진=이영훈 기자)
그는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조정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정신청사건은 통상 소송보다 첫 기일이 지정되기까지 수개월이 덜 걸리고 인지대도 동일한 금액의 분쟁을 소송으로 제기할 경우보다 통상 1/10 수준으로 낮아지고 전자소송 방식으로 접수할 경우에는 더 낮아질 정도로 소송 대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고(민사조정법 제29조),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만큼 항소심, 상고심으로 이어지는 장기간의 소송을 예방할 수 있다. 또 당사자들의 자율적 합의를 기초로 하기에 판결 대비 이행률이 높고 후속 분쟁 발생 가능성이 낮은 특징이 있다.

김 변호사는 “재판 지연 문제는 단순히 사건 처리 속도 문제가 아니라 승소를 해도 당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면 사법신뢰가 떨어질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며 “법적 쟁점보다 감정적 갈등이 더 큰 장벽이 되는 사건에서 조정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갈등의 골을 좁혀 원만한 해결이 가능한 점에 비춰보면 신속하고 원만한 분쟁의 해결방식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법률전문가 조정위원과 함께 금융, 건설, 의료, 환경, 노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조정을 보다 활성화해 각 사건의 특성에 맞는 조정이 확대된다면 더욱 원만한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4년간의 경험을 통해 ‘융합형 전문가’로 도약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삼성그룹 변호사로 기업 법무 분야의 전문성과 수많은 형사사건의 좋은 결과를 통해 인지도를 얻은 김 변호사는 민사 상임조정위원으로 4년 동안 법리적 이해를 넘어 분쟁 해결의 핵심을 파악하고자 노력을 해 온 만큼, 이러한 노력이 가치있게 발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그는 최근 서울시 교육청 행정심판위원으로 위촉되며 학교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그는 “현대 사회의 법적 분쟁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데 학교폭력 사건과 같이 법적 쟁점과 교육적 관점, 그리고 당사자들의 심리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사건은 단순히 여러 분야를 다루는 ‘제너럴리스트’나 한 분야만의 전문가가 아니라 다양한 법률 영역에서 축적된 전문성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융합형 전문가’로서 의뢰인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의뢰인들의 삶과 시간에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법률가가 되고 싶고, 저 또한 이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