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고검장 "수사·기소 분리는 트로이 목마"…검찰개혁 반박

사회

이데일리,

2025년 6월 23일, 오후 03:26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권순정(사법연수원 29기) 수원고등검찰청장이 이재명 정부의 수사·기소 분리 추진에 대해 “형사사법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며 정면 반박했다.

권 고검장은 23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검찰의 미래를 그려봅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같이 밝혔다. 현직 고등검사장이 정부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권순정 수원고검장 (사진=연합뉴스)
◇“개념 모호하고 해외 사례 찾기 어려워”

권 고검장은 “수사·기소 분리 주장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개념이 모호하고 연원이 불분명해 참고할 만한 해외 자료를 찾기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사·기소 분리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형사사법시스템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트로이의 목마를 들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 고검장은 “검찰의 직접 수사 개시를 제한하거나 절제토록 하는 의미의 수사·기소 분리라면 우리가 보다 전향적이고 건설적으로 논의에 참여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검찰의 광범위한 직접 수사에 대한 국민 우려를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만약 수사·기소 분리가 검사의 수사를 일체 금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따라가는 사법 작용 중 하나인 소추 기능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므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권 고검장은 “문명국 중 어디에서도 소추를 결정하는 기관이 사실확인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나라는 없다”며 “법관이 판결을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 검사는 소추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고, 그게 다름 아닌 수사”라고 설명했다.

권 고검장은 특검 제도와 관련한 우려도 표명했다. 그는 “이러한 제도개선이 이뤄지더라도 다수당인 집권여당이 정적을 공격하는 이슈에서 특검법을 통과시켜 무제한 검찰수사를 진행한다면 제도 개선은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수사가 특검이라는 제도와 결합해 힘센 의회 권력의 내로남불식 공격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이 문제도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검수완박 전철 밟지 말고 공개 토론해야”

권 고검장은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진짜 전문가들과 현장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지난 검수완박 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법안의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회의록조차 남지 않는 소소위 같은 밀실이 아니라 공개된 장소에서 의원 각자의 이름을 내걸고 심도 있는 토론과 심의를 진행해 훗날 역사의 책임을 따져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고검장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인용하며 “모든 사회문제의 책임을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이라는 한 사람에게 떠넘기는 장면이 나온다”고 소개했다.

그는 “새 정부의 제도개선 작업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손쉽게 검찰 탓으로만 돌리고 마는 이런 골드스타인 책임 전가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그런 감정적인 선동이나 음모론, 보복 감정으로는 제대로 된 해답을 낼 수 없다”고 했다.

권순정 고검장은 법무부 법무과장, 검찰과장, 대검찰청 대변인, 법무부 기조실장, 검찰국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 기획통으로 꼽힌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권 분리 등을 골자로 한 검찰개혁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