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박해를 피해 한국에 도착한 이들이 있다. 이들의 생사가 달린 난민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일. 그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과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과의 하루는 질문과 응답, 통역과 기록, 면접과 소송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을 구별하고 삶을 이해하며 정의를 구현하려는 이들의 고된 헌신이 있다.

정혜진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심사 아프리카팀장이 17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 심사를 하는 모습. (사진=김태형 기자)
◇“난민들, 한국 사회 정착 가교역할하고 싶어”
23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만난 정 팀장은 난민 담당 공무원으로서 느끼는 자부심에 대해 “우리나라도 6·25 전쟁을 겪으면서 피란민들이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보살핌을 받은 것처럼 난민전담공무원으로서 위협(박해)을 피해 안식처를 찾아온 난민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지역 난민심사를 전담 중인 그는 7년 전 국제정치 수업을 통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서울청에 입사했다. 그는 “난민심사를 통해 한 사람의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책임감을 늘 느낀다”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인터뷰할 때도 있고 부족어만 구사하는 신청자와 이중 통역을 거쳐 면접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사실 확인이 아니라 신청자의 진심을 포착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무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소수 언어 통역 문제도 크다. 줄루어 같이 희귀한 부족어만 구사하는 신청자의 경우 줄루어-영어-한국어로 이중 통역을 해야 한다. 2025년 기준 난민 전문 통역인은 393명, 36개 언어를 포함하고 있지만 희귀 부족어 통역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정 팀장은 최근 증가하는 남용적 난민신청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난민신청자 수가 급증하는 가운데 ‘취업 목적’으로 난민제도를 남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2013년 1574건이던 난민신청은 2024년 1만 8336건으로 12배 급증했다. 이에 심사적체 건수도 같은 기간 1977건에서 2만 7704건으로 14배 늘었다.
그는 “체류와 취업 목적의 가짜 난민 신청자가 늘면서 결과적으로 진짜 난민에 대한 심사가 뒤로 밀리는 부작용이 생긴다”며 “1차 난민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총 67명에 불과하다. 1차 난민심사 평균 소요 기간은 14개월로 심사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난민인정 심사가 신속하게 공정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난민 심사관 대폭 증원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정 팀장은 “러시아나 시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전쟁이나 내란을 피해 입국하여 신청하는 경우 대부분 난민협약상 난민인정 요건에는 부합하지 않아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신분증도 없고 민족적 정체성을 감춰 살아왔던 로힝야족 모녀가 마침내 난민 인정받고 한국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며 “진정한 난민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1인당 300건 넘는 소송 담당…재신청 요건 제한해야”

17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만난 조철호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소송팀장.(사진=김태형 기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난민소송은 전체 행정소송의 19.3%, 대법원 상고심 사건의 41.8%를 차지한다. 2014년 665건에서 2023년 6296건으로 9.5배나 증가했다. 이중 대다수는 ‘경제적 이유’ 또는 ‘징병 기피’ 등 난민협약상 난민인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이유로 신청된 건이다. 행정소송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2.4개월로 2년 가까이 걸린다.
조 팀장은 “우리청 난민소송의 원고 패소율은 99.7%에 달하는데 그만큼 난민인정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신청이 많다는 방증으로 제도 남용사례를 줄여야 진정한 난민에 대한 보호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누적 난민신청 12만 2095건 중 난민협약 이외의 사유(경제적 목적, 사인 간 위협 등)로 신청한 건수는 5만 1432건으로 전체의 약 42%를 차지한다.
조 팀장은 한국 난민제도의 개선 방향에 대해 “현재 우리나라는 모든 난민신청에 대해 면접조사를 필수로 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호주 등 일부 국가는 난민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신청은 서류심사만으로도 기각할 수 있도록 법령이 정비돼 있다”며 “법률 개정을 통해 진정 난민에 대한 심사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6월부터 3회 이상 신청을 제한하고 있는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재신청 요건을 엄격히 하고 허위 신청자나 알선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현장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반복되는 거짓 진술과 허위 신청을 접하다 보면 좌절도 크다”면서도 “위협(박해)을 피해 우리나라를 찾아온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가 매일 노력하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