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주범' 막힌 배수구 찾아다닌다…19만 팔로워 '그분' 정체는

사회

뉴스1,

2025년 7월 13일, 오전 07:00

지난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배수구에 버려진 담배꽁초 등 각종 쓰레기(인스타그램 '청소하는 사람' 영상 갈무리)

지난 5월 10일 저마다 손에 집게를 든 60여 명이 여름철 상습 침수 구역으로 알려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에 모여 배수구로 향했다. 뚜껑을 들어 올리자 셀 수 없이 많은 담배꽁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담배꽁초를 주워 준비해 온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렇게 주운 쓰레기는 금세 50리터 종량제 봉투 서너개를 채웠다. 배수구를 깔끔히 비운 이들은 "시대가 어느 땐데 누가 아직도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나"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사람은 회사원 브릭 씨(가명·35)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청소하는 사람'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첫 게시물 제목은 '시작'이었다.

팔로워 1명이 늘면 쓰레기 1개…4개월 만에 19만명 모아
브릭 씨는 팔로워 1명을 늘 때마다 쓰레기 1개를 줍는다는 말을 시작으로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하나씩 치웠다. 13일 그의 팔로워 수는 19만 4000명을 넘어섰다. 4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20만에 가까운 사람들을 끌어모은 셈이다.

그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데 익숙해져 있을 뿐이지, 마음 한편에는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제가 먼저 나서니 많은 분이 공감 해주고, 응원을 보내주신다"고 했다.

처음에는 혼자 쓰레기를 주웠지만, 이제 수많은 동료가 생겼다. 브릭 씨는 쓰레기를 함께 주울 동료를 모집해 시간이 날 때마다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으러 나선다.

브릭 씨는 20만 가까운 팬을 보유했지만 지금까지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게 되면 민망할 것 같다"며 "혼자 카페 가고 한강에 다니는 걸 좋아하는 데 그런 소중한 일상을 뺏기고 싶지 않다"고 짧게 답했다.

10일 오전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인스타그램 '청소하는 사람'을 운영하는 회사원 윤브릭 씨(가명·35)를 만났다. 2025.7.10/뉴스1 김종훈 기자

서울 강남·구로 막힌 배수구 청소…"배수구만 막혀도 침수 속도 빨라져"
브릭 씨는 이제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걸 넘어 사회 인식 변화도 꿈꾸고 있다. 그래서 시작한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침수 대비 프로젝트'다. 여름철 쓰레기로 꽉 막혀 도심 침수를 유발하는 배수구부터 청소하자는 취지다.

5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강남을 시작으로 경기 안양, 서울 구로·신도림·신림 지역의 쓰레기로 꽉 막혔던 배수구를 하나씩 비웠다. 브릭 씨는 "장마가 시작되면 배수구가 막힌 것만으로도 침수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진다"며 "어차피 쓰레기를 줍는다면 '이것부터 막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3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에 모인 팔로워들은 단순한 격려를 넘어 그의 활동을 접하고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는 메시지와 인증 사진을 수시로 보낸다고 한다.

강원 속초의 한 시민은 "좋은 영향을 받아서 언니랑 조카, 강아지랑 저녁 산책 나와 놀이터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다"며 "전에는 내가 버린 게 아니라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하루 하나라도 주워보려고 한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처음부터 안 버리는 문화로 가야…버리는 사람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
그의 최종 목표는 사람들이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쓰레기를 주워도 누군가 계속 버린다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브릭 씨는 "쓰레기를 주워서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자는 생각보다는 버리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자는 생각이 컸다"며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문화 자체를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쓰레기를 주우며 알게 된 이들과 '침수 대비' 이후 무대를 옮겨 다음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개강 시즌인 9월부터는 대학가에서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우리가 줍는다'는 취지로 캠페인과 함께 쓰레기를 주울 예정이다.

그는 "대학가 주변 쓰레기 대부분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버리기 때문에 '우리 학교는 우리가 잘 관리하자'는 문화를 퍼뜨리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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