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특검 수사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9일 밤 서울중앙지법에서 두 번째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대기장소인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2025.7.9/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체 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을까. 12·3 비상계엄은 선포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가사의한 일처럼 느껴진다. 당시 그는 대통령 임기가 무려 2년 6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그는 정부 인사 탄핵과 입법 독재를 반복하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경고성 계엄이라고 주장해 왔다. 세간에선 각종 비리 의혹에 연루된 자신의 아내 김건희 여사를 방어하기 위한 계엄이 아니었냐는 시선을 보낸다. 이외에도 다양한 가설이 계엄의 요인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무엇 하나 명쾌한 답이라고 결론 내리기 어렵다.
윤 정부에서 영전했거나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됐던 이들이 한목소리로 증언하는 것이 있다. 검사 시절부터 윤 전 대통령은 '반골 기질'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그런 성향은 그를 끌어올려 '권력의 정점' 대통령으로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하긴 했다.
2013년 검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 전 대통령은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국회의 국정감사에도 출석한 윤 전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단숨에 그는 정의와 원칙을 추구하는 강골 검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검사동일체'가 조직 문화인 검찰에서 그처럼 사생결단하듯 상부와 충돌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쉽지 않은 일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윤 전 대통령은 기질적으로 조직 논리에 반동하는 인물이었다.
외압 의혹 폭로 후 한직을 전전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급부상했다. 국정농단 수사 특검팀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평검사에서 전국 최대 검찰청 수장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적폐 수사를 지휘해 정부의 신임을 얻었고 결국 검찰 서열 1위 검찰총장에 올랐다.
그리고 알려졌다시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수사를 놓고 문재인 정권과 충돌했다. 잘못이 있으면 수사하고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문제는 절제를 모르는 수사 방식이었다. 과거에도 검찰의 저인망 수사는 악명 높았지만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켰다.
윤석열의 검찰은 조 전 장관과 그의 아내 정경심 씨, 딸 모두 기소했다. 이 중 조 전 장관과 정 씨는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됐다. 이와 관련해 '정의와 원칙을 세웠다'는 지지 여론이 생겼으나 검찰 내부에서조차 '검찰권이 남용됐다'는 우려가 컸다.
조직 내 불문율이나 관례를 거부하는 윤 전 대통령의 반골 기질이 법무부 장관 출신의 유력 인사와 그의 아내(현재 가석방)를 모두 구속하는 초유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관련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고 김 여사 또한 주가 조작 등 각종 의혹으로 구속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비상계엄 역시 윤 전 대통령의 반골 기질을 엿볼 수 있는 가늠자다. 평균 수준의 상식과 판단력을 갖춘 리더였다면 계엄 당시 원내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을 최소한 겉으로나마 정치적으로 대하며 협상과 소통을 시도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옳든 그렇지 않든 정무적 판단할 줄 아는 대통령이었다면 민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 이미 '확신범'이 돼 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조국 수사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선택은 옳고 결국 승리한다는 경험을 맹신했던 것 같다.
그는 또다시 반동에 이르렀다. 계엄은 자해를 넘어 자폭 행위에 가까웠다. 자폭이라 표현한 것은 '수많은' 윤 정부 사람이 그 유탄을 맞아 줄줄이 구속되거나 기소됐기 때문이다. 그중 일부는 "윤 전 대통령이 대인일 줄 알았다"며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계엄의 밤' 악몽에 시달리는 윤 정부 사람 가운데 정신과 약물 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반골 기질 대통령을 따른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