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섬유화증(primary myelofibrosis, PMF)은 혈액을 만들어내는 조직인 골수가 점차 섬유조직처럼 딱딱하게 변하면서 제 기능을 잃는 희귀한 골수증식성 종양의 하나이다. 이 질환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약해지고, 빈혈, 출혈, 감염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결국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킨다.
기존 연구들은 이 질환이 거핵세포(megakaryocyte), 즉 혈소판을 생성하는 특수한 혈액세포의 이상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단순히 하나의 세포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세포 유형이 상호작용하며 병이 점점 악화되는 매우 복잡한 과정임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골수섬유화증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눴다. ▶전섬유화기 골수섬유화증(pre-fibrotic PMF): 병이 시작된 초기 단계 ▶진행성 골수섬유화증(overt PMF): 병이 많이 진행된 단계. 이렇게 나눈 두 그룹의 골수세포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단일세포 RNA 분석을 통해, 병의 진행에 따라 조혈모세포(피를 만들어내는 줄기세포)가 거핵세포 쪽으로만 분화되며, 염증과 섬유화를 유도하는 유전자들이 강하게 발현되는 경향을 확인했다.
특히 진행성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정 하위군의 거핵세포가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 세포들은 ‘상피-간엽 전이(epithelial-mesenchymal transition, EMT)’ 관련 유전자를 발현하고 있어, 섬유화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T세포와 NK세포(자연살해세포)에서도 세포독성(cytotoxicity) 증가와 기능 이상의 징후가 나타났다. 이러한 면역세포의 변화는 병의 진행에 있어 면역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추가로, 환자의 말초혈액에서 아세포(blast) 비율이 1% 이상인 경우, 염증 및 섬유화 유전자가 활성화된 조혈모세포와 거핵세포 하위군이 더 자주 관찰되었다. 이는 혈액검사로도 병의 심각도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연준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존 치료법이 놓치고 있던 세포 수준의 섬세한 변화를 포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라며, “골수섬유화증을 단일한 원인보다는 복합적 세포 변화로 이해하고 치료 접근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사용 중인 치료제인 JAK 억제제(JAK inhibitors)는 병의 증상을 완화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지만, 실제로 섬유화를 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 연구는 이 점에 착안해, 섬유화 유전자를 다수 포함한 특정 거핵세포 하위군을 새로운 치료 타깃으로 제시했다. 이는 정밀의료(Personalized Medicine)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기초 자료다.
정 교수는 “앞으로는 환자 개개인의 세포 특성과 유전자 발현에 따라 맞춤형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그 첫걸음을 이번 연구에서 내디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골수섬유화증 환자 거핵세포 하위군의 분자특성(왼쪽) 및 세포간 신호전달(오른쪽) 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