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beautiful"…사랑인줄 알았지만, 사기의 시작이었다

사회

이데일리,

2025년 7월 18일, 오전 07:18

피싱 사기 종류와 수법이 점차 교묘해지면서 피해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일정한 ‘시나리오’ 안에서 움직입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이 시나리오를 알고 있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데일리는 수사기관의 협조를 받아 시민들의 괴롭히는 피싱 시나리오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만약 지금 누군가의 전화나 메시지를 받고 있고, 상대방이 아래의 말을 하고 있나요? 사기 가능성 100%입니다. 지금 당장 끊으세요.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사진=챗GPT)
◇“Hi” 미군이 보낸 DM, 악연의 시작

손민지(가명)씨는 평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즐겨 사용하는 평범한 30대 직장인 여성이다. 손씨는 평소처럼 인스타그램 DM을 확인하던 중, 한 백인 남성 프로필로 온 채팅 요청을 보고 호기심에 대화를 시작했다.

이 남성은 “Hello, beautiful” 이라며 말을 걸어 왔다. 손씨도 ‘이 정도 쯤이야, 한국에 관심이 있나?’라고 생각하며 “Hi” 라고 답 인사를 건넸다.

손씨는 채팅이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남성의 프로필을 살폈다. 프로필엔 US Army라고 적혀 있었다.

프로필엔 이 남성이 생활하면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풍경 사진이나 군복 사진이 여럿 있었다. 사진이 약간 어색한 느낌도 들었지만 손씨는 ‘외국 사람이니까 그렇겠지’라고 무심히 넘겼다. 채팅은 계속됐다. 이 남성은 자신의 이름이 ‘로버트(Robert)’라며 현재 파병 미군으로 이라크에 있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너무 외롭다며, 손씨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호감이 가 연락했다고 설명했다.

손씨는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내 인스타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호기심과 재미를 더 크게 느꼈다.

손씨가 번역기와 챗 GPT까지 동원하면서 둘의 채팅은 날마다 이어졌다.

◇열흘 넘게 지속된 채팅, 쌓인 정…‘비행기 삯’ 송금 요구

손씨는 로버트와 10여일간 채팅을 계속하며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로맨스스캠의 상당수는 이처럼 오랜 기간 채팅을 이어가며 친분을 쌓는다. 오래 대화를 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 로버트는 손씨의 일상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손씨도 로버트와 일상 공유를 통해 신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둘은 카카오톡으로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로버트는 손씨에게 군 생활이 너무 힘들다며, 파병지를 벗어나고 싶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때로는 미국에 있는 가족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손씨는 로버트의 이야기에 동정심을 느끼고 위로했다. 손씨는 로버트와 가까워지며 서로 ‘hone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비록 온라인이었지만,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둘의 사이는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손씨는 로버트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손씨는 로버트에게 여러 차례 전화나 영상통화를 요청했지만 로버트는 ‘군사시설이다, 임무 중이다’ 등의 핑계로 거절했다. 그러나 로버트가 ‘한국에 가서 당신을 만나 새롭게 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기 시작하면서 손씨는 로버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로버트는 “특별허가를 받아 휴가를 얻었다”고 손씨에게 소식을 알렸다. 기뻐하는 손씨에게 로버트는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며 어렵게 입을 뗐다. “미군 규정상 민간 비행기를 타려면 통관 수수료랑 보안 절차 비용을 보내야 하는데, 군인 신분이고 거래가 어려운 지역이라 외부 송금이 어려워요. 혹시 저 대신 보내줄 수 있어요?”

로버트는 300만원가량을 손씨에게 요청했다. 비교적 큰 금액은 아니었다. 그러나 손씨는 순간 망설였다. 하지만 로버트의 말이 그럴싸하게 보였고, “한국에 가면 함께하자”는 로버트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손씨는 ‘300만원 정도야 뭐. 사기면 더 큰 돈을 요구하겠지’라고 생각하며 흔쾌히 로버트가 알려준 계좌로 송금했다. 로버트는 손씨에게 “역시 당신 뿐”이라며 고마워했고, 손씨도 로버트가 보내온 메시지를 보며 흐뭇했다.



◇“이제 같이 살자” 믿었지만…‘통관료’ 송금 받은 뒤 잠적

손씨는 자신이 로버트의 피앙세(약혼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버트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주위에도 ‘곧 결혼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로버트는 이후 손씨에게 “내 전 재산을 너에게 보내 놓을게”라며 갑자기 현금과 귀중품이 든 가방을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손씨는 택배회사로부터 ‘가방이 인천에 도착했고, 통관료와 보안 비용 수백만원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로버트는 “내가 한국에 들어가면 돈을 주겠다. 우리 미래를 위해 받아 놔라”라고 손씨에게 말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함께 하는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하니 손씨의 마음이 또 흔들렸다. 손씨는 또 한 번 추가 송금을 감행했다.

손씨는 로버트와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로버트와의 연락은 뚝 끊겼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폭파된 상태였다. 손씨는 로버트가 작전에 갑자기 투입됐거나 국가를 옮겨 자신과 연락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 걱정했다.

비슷한 사례를 찾기 위해 검색하다가 손씨는 자신에 로맨스스캠이라는 것에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 접근하고 호감을 쌓은 후 금전을 요구하는 것까지…. 감정을 빼고 생각하면 자신의 사례와 완전히 일치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로버트의 목소리마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SNS 외 다른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손씨는 잃은 돈 걱정보다 정신적인 충격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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