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될 권리, 되지 않을 권리[법조프리즘]

사회

이데일리,

2025년 7월 21일, 오전 05:01

[박주희 로펌 제이 대표변호사]지난 8일 배우 이시영은 이혼 전 냉동 보관해 뒀던 배아를 전 남편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이식해 임신에 성공했다며 임신 사실을 공개했다. 배아의 5년 보관 기한 만료를 앞두고 폐기할 수 없어 전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단독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전 남편의 동의 없이 이뤄진 임신이 합법인지, 동의 없이 태어난 아이에 대해 생부로서 책임을 부담할 필요가 있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러한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는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 배아 이식에 관한 동의 규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윤리법에서는 배아를 만들기 위해 정자나 난자를 채취할 때는 기증자, 시술대상자,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반드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생성된 배아를 실제로 이식할 때도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항은 없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시험관 시술이 증가하면서 지난해 신규 생성된 배아는 78만3860개로 5년 전인 2019년 42만7818개와 비교하면 83.2% 증가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배아 이식이 여전히 법적 회색지대에 남아 있다는 허점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현행법에 배아 이식 시 전 배우자의 동의를 요하는 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에 이시영의 행동을 처벌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배우자의 동의 없는 배아 이식의 문제는 단순히 형사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현실은 이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일단 동의 없이 태어난 아이에 대해 생물학적 아버지가 법적 책임을 부담하는지가 문제다. 이시영의 경우 전 남편이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인정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생부에 대해 법적 아버지로서 양육비나 상속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생부를 상대로 별도의 인지 청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생부는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법적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는 ‘부모가 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 것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냉동 배아를 놓고 ‘부모가 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법적 논의를 진행해왔다. 미국 테네시주에서 냉동 배아를 놓고 이혼한 부부가 법적 분쟁을 벌인 사건에서 법원은 다른 쪽 배우자가 유전적 자녀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없는 등 예외적인 사유가 없는 한 두 사람의 ‘사전 합의’가 없는 경우 ‘부모가 되지 않을 권리’가 우선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른 주에서도 대체적으로 ‘부모가 되지 않을 권리’가 우선한다는 추세이지만 일부 주에서는 출산을 원하는 배우자에게 냉동 배아를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시영과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2018년 부부가 시험관 시술에 동의해 배아를 냉동 보관했지만 몇 년 뒤 이혼하게 됐고 이혼 후 전처가 전 남편을 대신해 시술 동의서에 사인하고 냉동 배아를 이식한 것인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전 남편은 냉동 배아를 전처에게 이식해준 병원 측에 자신의 동의 없이 냉동 배아를 이식해 자신에게 경제적인 피해가 발생했다며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전 남편이 사전 시험관 시술에 전처가 자신을 대신해 서명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서류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향후 사전에 작성한 배아 이식 동의서가 없는 사례에서도 과연 같은 결론이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설사 동의서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혼 유지 중에 작성한 동의서를 이혼 후에도 동일하게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될 권리’와 ‘부모가 되지 않을 권리’ 중 어느 권리가 우선 하느냐에 대한 답을 내리는 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적인 권리이기도 하지만 생명에 대한 공적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위기, 증가하는 시험관 시술과 동시에 높아지는 이혼율이라는 현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섣불리 한쪽 손을 들어줄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관련 규정조차 정비되지 않았다는 것, 사회적 논의조차 진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생명’에 대한 철학이 결여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번 사건이 단순히 연예인 사생활 논란에 그치지 않고 냉동 배아가 지니는 윤리적·법적 지위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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