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복지 신청주의’로 인한 이같은 안타까운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1차 신청 첫날인 지난달 2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소비쿠폰을 신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신청주의로 운영돼온 기존 복지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이미 데이터 기반 선제 지원을 일부 시도해왔다. 예컨대 복지부는 올여름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이음)의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AI 초기상담 전화, 복지위기 알립 앱 등을 활용해 혹서기 위기가구 발굴에 나섰다. 통신비·관리비건강보험료 체납, 단전·단수 등 18개 기관의 45종 정보를 활용해 위기 징후를 포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자동지급제를 전면 시행하려면 훨씬 더 광범위하게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해야 한다. 공공 복지수당과 서비스만 해도 중앙 부처 367종, 지방자치단체 4651종, 민간 339종 등 모두 5357종에 달해 범정부 차원의 연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민 개개인의 재산·소득·건강·고용 등 민감한 정보를 정부가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지도 쟁점이다. 사회보장급여법, 사회보장기본법 등 개정을 위한 국회의 동의도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취약계층이 애초 이런 행정망으로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민등록번호 말소자나 거주불명자 등은 당초 제도권 밖에 놓였던 이들은 기계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질병으로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도 데이터가 이를 즉시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제적으로 요구가 표준화된 복지 영역의 경우 중앙정부 차원에서 취합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하되 돌봄 등 개인마다 욕구가 다른 서비스 영역에서는 전달 체계가 필요하다”며 “주민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지자체가 가정 방문 서비스 등을 통해 지역사회 단위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발굴하는 게 복지정책의 본래 취지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기술적 오류로 누락이나 과지급이 발생했을 때 정부와 공무원, 시스템 중 어느 주체에 책임을 물어야 할지 불분명하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법무법인 민후의 양진영 변호사는 “AI 시스템을 도입해 서비스한 주체가 정부인 만큼 1차적인 대국민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며 “피해가 발생할 시 어느 부처에 문제 제기를 해야할 지 운영 책임 주체를 분명히 하고 사후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미리 구축해 선제적으로 안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동지급제 시행 시 수혜자 범위가 커져 관련 지출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신규·재진입 수급자가 동시에 늘어나는 경우를 대비한 재원 조달 방안과 제도 도입 범위 논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올해 중앙정부 예산(677조 4000억원)에서 보건·복지·고용 분야(249조원)가 차지하는 비중은 36.8%에 달하며 국정기획위원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위해 58조원을 주요 재정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다.
결국 모든 제도를 일괄적으로 전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꼭 필요한 제도에 한해 선택적 적용하는 등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재산을 면밀하게 평가해야 하는 제도도 있는 만큼 모든 급여에서 신청주의를 한 번에 없앨 수는 없다”며 “아동수당, 건강보험 등 보편성과 판정 용이성이 높은 급여부터 자동지급으로 전환해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면서 신청주의와 혼합형으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