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챗GPT)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의 끔찍한 과거를 알게 됐습니다. 남편의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는데요. 친구들이 언뜻언뜻 꺼내는 이야기들이 좀 이상했습니다. 제게 뭔가 숨기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 이후부터 남편에 대해 알아보고 수소문을 했는데, 남편이 학창시절 학교폭력을 일삼고 심지어 성범죄의 가해자였다는 겁니다. 그 일로 소년원까지 다녀왔다는 겁니다.
남편은 과거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범죄 전력이 있는 남자와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를 속이고 결혼한 것에 너무나 화가 나고요. 이 결혼을 취소 할 수 있을까요?
-성범죄 전력을 숨겼는데요. 혼인을 취소할 사유가 될까요?
△유은이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 혼인취소란 당사자 사이에 혼인신고가 돼 있으나 혼인의 성립과정에 흠이 있는 경우 혼인의 효력을 장래에 향해 소멸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민법 제816조에서 정하는 혼인취소사유로는 혼인 연령 위반, 근친혼, 중혼, 혼인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 사유가 있거나,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해 혼인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가 있습니다.
-사연자는 혼인 취소가 가능할까요?
△유은이 변호사: 사연자는 남편이 성범죄 전력 등을 고의로 속이고 결혼했으므로, 사기로 인해서 혼인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로 보아 혼인취소 사유에 충분히 해당할 수 있습니다.
혼인취소 사유에서 말하는 혼인 사기란 혼인 일방 당사자 또는 제3자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진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숨기거나, 침묵한 경우도 포함됩니다. 사연자의 경우 남편이 자신의 범죄전력이라는 중대한 사건에 대해서 미리 고지하지 않은 부분도 혼인취소 사유 중 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사기로 인해 혼인이 취소되기 위해서는 사기로 인해 생긴 착오가 일반적으로 사회 생활관계에 비춰 볼 때 혼인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당사자가 그러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여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사회 통념상 성범죄 전력이라는 사유는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혼인취소 사유가 인정되는 사기로 충분히 보입니다.
-전과기록은 미리 알아봤어야 하는 것 아닌지?
△유은이 변호사: 혼인 전 전과기록(범죄경력 자료)을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뿐더러, 사연자의 남편은 전과기록을 확인하더라도 성범죄 전력을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소년원 송치 기록은 형사 처벌과 달리 전과기록이 남지 않아서 직접 얘기하지 않으면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미성년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소년법상 별도로 규정된 처분을 받으며, 소년 보호처분에는 감호 위탁,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보호관찰 등이 있고, 이중 가장 중한 처분이 소년원 송치로, 성폭력범죄나 강도 같이 죄질이 매우 나쁘고 재범 가능성이 높을 때 소년원 송치처분이 내려집니다. 소년원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관할의 교육기관이어서 전과 기록에 남지 않고 취업이나 입대에 있어서도 결격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전과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직접 사연자에게 말해주기 전까지는 사연자가 남편의 성범죄 전력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사연자가 남편의 성범죄 전력을 미리 알았다면 애초부터 결혼을 결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경우에 있어서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혼인취소 소송을 할 때 주의할 점이 있을까요?
△유은이 변호사: 혼인취소는 취소 사유에 따라 제척기간 제한을 받으며, 사연자의 경우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 소송을 해야 하는데, 이때 소를 제기해야 하는 제척기간은 민법 제823조에 따라 사기를 안 날로부터 3개월입니다. 즉, 사연자가 사기를 최초로 안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 소송을 하면 혼인취소가 되지 않기 때문에 빨리 소송을 제기 해야 합니다. 다만 혼인취소 소송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어도 이혼 소송은 가능하기에 혼인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예비적으로 이혼 청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혼인취소는 처음부터 혼인이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취소 판결을 받은 시점부터 장래에 향해 혼인의 효력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인관계증명서에는 혼인취소 이력이 남습니다. 따라서 혼인취소를 한다고 미혼 상태와 같아진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이러한 혼인 취소 소송을 하면서 남편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도 가능하며, 혼인의 효력이 장래에 향해 사라진다는 면에서 이혼과도 비슷한 성격이 있으므로 혼인취소 소송을 하면서 재산분할 청구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 변호사. △24년 가사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사단법인 칸나희망서포터즈 대표 △전 대한변협 공보이사 △‘인생은 초콜릿’ 에세이, ‘상속을 잘 해야 집안이 산다’ 저자 △YTN 라디오 ‘양소영변호사의 상담소’ 진행 △EBS 라디오 ‘양소영의 오천만의 변호인’ 진행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이데일리는 양소영 변호사의 생활 법률 관련 상담 기사를 연재합니다. 독자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법률 분야 고충이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사연을 보내주세요. 기사를 통해 답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