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당시 방송 영상.
이후 대부분이 검거됐으나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은 4명이 10월 15일 밤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있는 한 가정집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였다. 인질 중 1명이 탈출해 신고를 하면서 경찰 병력 1000명이 집결해 대치가 시작됐고, 방송사까지 모여들면서 인질범들의 모습이 전국에 중계됐다.
대치를 벌이는 동안 이들이 보인 행동은 여러모로 극적이었다. 특히 가장 나이가 많은 지강헌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내 마지막 만큼은 내 뜻대로 살겠다” 같은 말들로 자신의 불우한 삶에 대한 비탄을 남겨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들은 돈이나 탈출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말이 방송되는 걸 원했고, 나중엔 비지스의 ‘할리데이’를 현장에 틀어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남달랐던 이 인질극은 결국 지강헌이 사살되고, 2명은 자살, 1명이 검거되는 것으로 끝났다.
돈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밖에 못마친 지강헌은 배운 일이라곤 도둑질밖에 없어 교도소를 드나들다 마지막엔 상습절도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특히 징역형은 7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악명 높은 보호감호 명령을 10년이나 받아 자신보다 중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보다 오래 교도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탈옥 역시 이같은 불합리한 판결에 대한 불만이 주된 이유였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사람을 구금하는 보호감호 제도는 신군부가 사회통제 수단으로 만든 악법 중의 악법이었고, 법관들이 그렇게나 중요하게 여긴다는 ‘비례의 원칙’에 완전히 반하는 터무니없는 제도 임에도 이 사건을 계기로 겨우 여론이 환기됐다. 그러고도 이 제도가 완전히 폐지된 건 10년도 넘은 2005년이 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