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검 강압수사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10.1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너 혹시 XXX 검사 아니?"
"아니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분명 너를 안다고 했는데, 너랑 인터뷰도 했었다고…"
사회부로 넘어와 생활한 지 2년이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제 기사를 읽어 웬만한 사건 사고, 사회적 이슈는 꿰뚫고 계셨던 제 어머니마저 얼마 전 당하셨습니다. '보이스피싱인 거 모르셨냐'고 묻는 말에 "'딸이 명색이 사회부 기자인데 엄마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면 되겠느냐'라고 검사라는 사람이 압박하는데 보이스피싱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등 공공기관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히는 보이스피싱은 수년간 이어져 온 전형적인 수법이지만 지금까지도 그 피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분명 본인이 하지 않았음에도 수사기관에서 '했다'고 하니 일단 믿을 수밖에 없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압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비단 제 어머니 일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사회부 기자로서 경찰과 검찰을 모두 출입하며 청사를 밥 먹듯이 오가던 저 역시도 어머니 일로 방문한 경찰서는 새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성실하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국민들에게 수사기관은 더욱 그러할 것 같습니다. 신변을 보호하고 치안을 유지해 준다는 신뢰와 함께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 경찰차만 봐도 괜히 움츠러들거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최근 김건희 여사의 각종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김건희 특검)에서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조사를 받은 양평군청 공무원 50대 남성 A 씨가 사망했습니다. 생전 자필 문건에 따르면 특검의 강압 수사와 회유 압박으로 고통받았다고 합니다. 특검 측은 "강압과 회유는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A 씨 측 변호인은 조사의 위법성을 검토한 뒤 법적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A 씨 죽음으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당사자 없는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A 씨와 같이 수사를 받다가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 죽음을 택한 비극은 과거부터 꾸준히 있었습니다. 대체로 검찰의 반인권적 강압 수사가 원인으로 지목돼 오랫동안 검찰개혁의 요구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재명 정부 들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검찰청을 폐지하는 극약처방이 내려졌습니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통과되면서 검찰청은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0월부터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강압 수사의 원흉'이던 검찰을 제거했으니 더는 수사 과정에서 죽음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우리는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교롭게도 김건희 특검에서 A 씨를 조사한 수사팀에는 전·현직이든 검사 출신이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판사 출신 특검보를 중심으로 12명의 경찰과 2명의 젊은 변호사들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개정된 정부조직법에 따라 향후 검찰의 수사권은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나눠 갖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검찰이 가졌던 수사권이 경찰·중수청으로 넘어간 것일 뿐, 그 본질은 그대로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수사권을 가진 경찰과 중수청에서 또다시 죽음이 반복된다면 그땐 두 기관도 폐지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비극은 단순히 수사기관의 잘못이 아니라 '집중된 수사 권한'이 문제입니다. 검찰이 독점한 수사권이 죽음을 불러일으켰듯, 경찰과 중수청에게 수사권이 집중된다면 또다시 죽음은 반복될 것입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검찰이든 경찰이든 중수청이든 그저 다 같은 수사기관일 뿐입니다. 신뢰와 공포의 대상 말입니다.
특히 현재 돌아가는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과 같이 소기의 실적을 요하는 '정치적 성격이 짙은 수사'일수록 그렇습니다. 수사관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한들 조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회유와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건희 특검은 내란·순직해병 특검보다 의혹이 산적한 만큼 수사팀만 9개에 달합니다. 피의자와 참고인 등 사건 관계자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합니다. 대부분은 실명을 보도할 수 없는 일반인입니다. 각 수사팀은 저마다 조사가 필요한 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소환해 조사하고 있지만 특검 내 통용되는 최소한의 운영 방침이나 수사 준칙은 없다고 합니다. 수사와 기소 권한을 모두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최소한의 감시나 통제 장치의 부재 사실이 한편으로 놀라울 지경입니다.
지금이라도 특검 내 인권 보호 준칙이나 내부 방침 마련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국무총리실 산하 범정부 검찰제도개혁 태스크포스(TF)에서도 수사기관 운영방안 관련해 논의돼야 합니다. 검찰개혁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인권 보호입니다. 고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younm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