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142m 빌딩 청신호…서울시 승소했지만 '2라운드' 예고?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06일, 오후 02:08

[이데일리 성주원 장병호 기자] 서울시가 문화재 인근 고층 건축물 규제 조항을 삭제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5월 제정한 ‘서울시 국가유산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는 최종적으로 유효하게 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국가지정유산 100m이내)을 벗어난 곳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게 됐다. 다만 국가유산청은 “종묘가 개발로 인해 세계유산의 지위를 상실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종묘 영녕전. (사진=국가유산청)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6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제기한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중 개정조례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하고 예비적 청구를 각하했다. 서울시가 실질적으로 승소한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2023년 10월 4일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제19조 제5항을 삭제했다. 해당 조항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밖이더라도 문화재 특성과 입지여건으로 건설공사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시장이나 구청장이 문화재 보존 영향 검토를 거쳐 문화재청장 허가 필요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내용이었다.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은 서울시의회의 해당 조례 삭제가 상위법인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조항 삭제 과정에서 국가유산청장과 협의도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문체부는 서울시에 재의를 요구했으나 불응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먼저 소의 이익을 인정했다. 해당 조항을 담은 구 조례가 지난해 5월 폐지되고 ‘서울특별시 국가유산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로 대체됐지만, 새 조례에도 해당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구 조례가 폐지됐더라도 조례안 의결에 대한 무효 선언을 통해 현행 조례의 재개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소의 이익을 예외적으로 인정했다.

핵심 쟁점인 법령우위원칙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법령의 범위를 벗어나 규정돼 효력이 없는 조례를 개정 절차를 통해 삭제하는 것은 적법한 조례 제·개정 권한 행사”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및 같은 법 시행령은 해당 조항을 개정하기 위해 국가유산청장과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거나, 해당 조항과 같은 내용을 반드시 두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상위법령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초과하는 지역에서의 지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사항까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했다고 해석되지 않는다”며 “서울시의회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법령우위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문체부가 추가한 예비적 청구에 대해서는 각하했다. 문체부는 “새로 제정된 현행 조례 중 해당 조항이 없는 부분은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주무부장관이 지방자치단체 장에 대한 재의 요구 지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방의회를 상대로 조례 자체의 효력을 다투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지방자치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 직후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이번 판결은 서울시의회가 주민의 일상을 편안하게 하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법령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치입법을 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법 개정에 나서고 있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소중한 문화재의 보호와 규제 개혁을 통해 보다 나은 서울을 만들겠다는 시민의 여망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패소한 국가유산청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종묘가 개발로 인해 세계유산의 지위를 상실하는 일이 없도록 문화유산위원회와 유네스코(UNESCO)를 비롯한 관계 기관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필요한 조치들을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지난달 30일 서울시가 고시한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를 기존 청계천변 71.9m에서 141.9m로 상향 조정했다. 세운4구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져 있다.

서울시는 종묘 보존지역(100m) 밖이므로 높이 규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 권고 절차인 세계유산영향평가가 선행되지 않았다며 “초고층 건물이 종묘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운4구역은 2004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20년간 경관 보존과 수익성 문제로 표류해왔다. 2018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고 71.9m 기준으로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으나, 이후 착공이 지연됐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조감도. (사진=서울시)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