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여행 가자"던 SNS女…알고보니 캄보디아 사기단[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기]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23일, 오후 01:21

[편집자 주] 서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기 범죄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능화, 조직화, 대형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기의 종류와 수법 등도 다양하면서 검(檢)·경(警)의 대응도 임계치에 다다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이데일리는 사기 범죄에 대한 경각심 확대 차원에서 과거 사기 범죄 사건을 재조명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기(꼬꼬사)’를 연재합니다. 사기 범죄의 유형과 수법 그리고 처벌에 이르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만약 발생할 수 있는 범죄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사진=챗GPT 달리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물건을 등록만 하면 10~15%씩 수익이 들어와요. 저도 이렇게 많은 돈을 벌고 있어요.”

2024년 6월, SNS에서 만난 여성 Q는 피해자 P씨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온라인 쇼핑몰 투자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며칠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은 뒤였다. P씨는 Q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Q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바벳 지역의 한 사무실에서, 성명불상의 조직원이 다른 여성의 사진을 도용해 만든 가짜 계정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권유한 쇼핑몰 투자는 처음부터 피해자의 돈을 빼앗기 위한 정교한 함정이었다.

◇해외 사무실에 구축된 범죄 시스템

이 사기 조직은 2024년 1월경 중국인 총책 J에 의해 조직됐다. 캄보디아 바벳과 라오스 비엔티안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책상과 컴퓨터, 인터넷 서버는 물론 조직원을 감시할 CCTV까지 설치했다. 조직원들이 함께 거주할 숙소도 별도로 마련했다.

조직의 위계는 명확했다. 범행 전체를 총괄하는 총책, 조직원을 관리하는 관리책, SNS로 피해자를 유인하는 콜센터 팀원, 대포통장과 조직원을 모집하는 모집책, 그리고 편취한 돈을 세탁하는 송금책까지.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었고, 서로를 철저히 가명으로만 불렀다.

조직의 통제는 강압적이었다. 사무실 건물 입구에는 총을 든 현지인 경비원 5~6명이, 각 층에는 2~3명이 배치됐다. 출입하려면 출입증 카드를 들고 셀카를 찍어 중국인 관리자에게 보내야 했다. 탈퇴하려면 미화 1만 달러(약 14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했고, 귀국을 원하면 친구 한 명을 인질처럼 남겨야 했다.

조직원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근무했다. 지각하면 급여가 삭감됐고, 실적이 부진하면 밤 11시까지 추가 야근이 강제됐다.

◇“먼저 돈을 보내야 수익이 생겨요”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조직원들은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에 여성 프로필 사진을 올린 대포 계정을 만들어 ‘골프’, ‘영화’ 등을 주제로 오픈채팅방을 개설했다. 채팅방에 들어온 사람들과 며칠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이성적 호감을 쌓았다.

충분히 친분이 쌓였다고 판단되면 “가상화폐나 쇼핑몰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해외여행 미션을 진행하면 같이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식으로 투자를 권유했다.

P씨의 경우, 조직원은 R이라는 쇼핑몰 사이트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홈페이지에서 상점을 개설하고 물품을 등록하면, 소비자들이 물품을 구매한 후 그 대금의 10~15%를 수익으로 얻을 수 있어요. 다만 소비자에게 주문을 받으면 그 물품대금을 먼저 판매자에게 보내줘야 해요.”

합리적으로 들렸다. P씨는 2024년 7월 3일 ‘주문 처리 비용’ 명목으로 10만원을 송금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2개월간 119회 송금…피해액 5억8000만원

한 번 송금이 시작되자 조직원들은 계속해서 추가 입금을 요구했다. “더 큰 수익을 위해서는 더 많은 주문을 처리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피해자들은 이미 보낸 돈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계속 송금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 6월부터 7월 24일까지 약 2개월간, 이들은 P씨를 포함한 13명의 피해자로부터 119회에 걸쳐 총 5억8689만원을 편취했다. 송금받은 돈은 즉시 2차, 3차 대포계좌로 이체되어 흔적을 감췄다.

◇“캄보디아에서 일하면 돈 번다”는 말에 가담한 20대들

이 조직에 가담한 피고인들도 처음에는 범죄 조직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B와 A는 2024년 5월 초순경 중학교 선배 M으로부터 “캄보디아에서 일을 하는 건데, 일할 사람들을 모아주면 매출 금액의 일부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피고인 C는 지인을 통해 B, A를 소개받아 “해외에 가서 일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항공권과 숙소가 제공됐고 ‘코인 관련 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캄보디아 현지에 도착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사기 범행 매뉴얼이었다. B와 A는 조직원을 모집하는 ‘모집책’으로, C는 SNS로 피해자를 유인하는 ‘콜센터’ 팀원으로 활동했다. 급여는 월 2000달러였고, 편취 금액의 15~20%가 추가 수당으로 지급됐다.

◇재판부 “죄질 불량, 실형 선고”

부산지방법원 형사3단독 심재남 부장판사는 지난 9월 17일 피고인 A에게 사기죄로 징역 4개월, 범죄단체활동 등으로 징역 2년 8개월을 선고했다. 이어 피고인 B에게 징역 2년 4개월을, 피고인 C에게 징역 2년 8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심 부장판사는 “로맨스 스캠 범죄조직의 일원으로서 사람을 기망하여 금원을 편취한 죄질과 범정이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 B의 경우 13명의 피해자 중 11명과 합의하고 1명을 위해 약 439만원을 공탁한 점, 피고인 C는 초범인 점 등이 참작됐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