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타임스퀘어` 정책의 그늘…빛공해 고통받는 시민들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16일, 오후 07:19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정부가 옥외전광판 규제를 완화한 이후 ‘대형 전광판’이 서울 곳곳의 명소가 되고 있지만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화려한 불빛에 인근 주민들이 ‘빛 공해’ 피해를 호소하면서다. 낮과 밤 구분 없이 번쩍이는 빛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규제 완화 후 지자체가 저마다 ‘한국판 타임스퀘어’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이로 인해 불거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건물 유리벽에 맞은 편 건물에 설치된 전광판의 붉은 불빛이 비치고 있다. 그 옆으로는 ‘눈부셔서 못살겠다 전광판을 철거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제발 철거를”…번쩍이는 광고판에 맞은 편 건물 ‘빛 공해’ 호소

지난 11일 오후,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건물 외벽 대형 전광판에서는 영상 광고가 송출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점차 어두워지니 광고 영상의 주황색, 흰색 등 형형색색 빛은 더욱 진해졌다. 그 빛은 고스란히 맞은편 건물에 쏟아지고 있었다. 단 왕복 2차선 도로만을 사이에 둔 맞은편 건물의 사무실 창문 대부분은 끝까지 블라인드가 쳐졌고, 건물 벽에는 ‘전광판을 철거하라! 눈부셔서 못살겠다!’는 현수막도 2개 내걸렸다.

이 갈등은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전광판을 설치한 회사는 5층 규모 세로 길이의 전광판을 설치해 광고 영상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은편 건물에서는 ‘빛이 직사광선처럼 들어온다’며 성동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건물 입주사들은 현수막을 내걸었고, 지난 10월에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까지 결성했다.

실제 이날 만난 건물 직원 A씨는 “실시간으로 바뀌는 전광판 색깔에 눈이 너무 아파서 못 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원 30대 장모씨도 “광고판이 생긴 뒤로 블라인드를 내리고 살아 해를 못 본 지 오래다”며 “제발 철거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에 해당 업체 측은 “옥외전광판을 적법하게 운영 중”이라며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성동구청과 함께 지난 14일 첫 삼자 간 미팅을 진행했지만 비대위 측은 광고판 철거를 요구하고 있어 협의에 난항이 예상된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구청도 노력하고 있다”며 “옥외광고 설치 전 심의할 때 민원이 발생하면 적극 대처할 것을 조건으로 가결된 것인 만큼 업체 측에 적극 대처를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 대형 전광판에서 광고 화면이 송출되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한국판 타임스퀘어’라지만…“눈 피로” 우려하는 시민들


이는 비단 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디지털 옥외광고물 규제를 완화하면서 광화문이나 여의도 등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 전광판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는 올림픽대로변과 샛강 쪽에 설치된 대형 광고판으로 250여 세대 주상복합 아파트 입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최모(53)씨는 “고층이라 광고판이 수시로 바뀌며 집안을 비추는데 고통받다가 암막커튼까지 달았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들 역시 영등포구청에 민원을 넣는 한편, 입주민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서울시 측과 협의에 나선 상태다.

대표 업무지역인 오피스 타운인 광화문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날 저녁 시간대 찾은 광화문 일대에는 사방으로 대형 스크린이 3개 이상 건물 외벽에 설치돼 있었다. 시민 사이에서는 ‘한국판 타임스퀘어’ 같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눈의 피로도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광장을 지나던 직장인 나모(29)씨는 “밤에 퇴근하며 건물을 빠져나올 때 갑자기 눈에 빛이 꽂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종로구청에는 이 전광판이 본격 운영된 지난 9월 이후 ‘이 전광판들의 빛이 너무 밝다’는 내용의 민원만 10여 건이 접수됐다.

빛 공해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가 2013년 만든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은 과도한 인공조명으로 피해를 끼치면 과태료 처분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빛 공해 민원에도 실제 과태료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23년을 기준으로 전국 빛 공해 민원 7594건 중 과태료 처분은 3건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20만~30만원대에 그친다.

해외에서는 인공조명으로 인한 빛 공해에 대해 과태료 수준을 넘어 강제 소등 명령이나 완전 철거 명령 등을 법에 명시하기도 한다. 빛 공해가 생활권과 건강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야간 시간대 광고판 운영 자체를 금지하거나, 백열전구 150W(와트), 다른 광원 70W 이상이면 빛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차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는 전광판이 가져올 홍보 효과뿐 아니라 시민에 미칠 영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광판의 경제적 효과도 있지만 시민이 느낄 수 있는 건강상 문제, 또 광화문은 역사적인 공간의 의미가 있는 만큼 두 가지를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