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영상 수업으로 꿈 키워요"…합천 대병중의 변신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18일, 오전 06:01

[합천(경남)=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지금보다 더 허겁지겁 뛰면서 나와야 해.” 대병중 연극 교사 유금송 씨의 지시에 학생들이 과장된 몸짓으로 연습실 안을 부리나케 뛰었다. 12명의 학생들은 각자 대본을 들고 목소리 톤을 높이거나 팔을 휘두르는 등 배역이 보여줘야 하는 조급함을 연기했다.

그 뒤에는 영상 수업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학교폭력 예방을 주제로 저마다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담당 강사 이현수 씨는 학생들에게 “여기서는 교실 전체를 보여주는 장면이 들어가야 한다”며 조언했다.

경남 합천 대병중 학생들이 연극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대병중)
학생이 직접 연기하고 영상 찍는 특성화중

경남 합천군 대병중은 연극·영상 분야에 특화된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특성화중학교다. 국어와 영어, 수학 등 일반중학교의 교육과정을 똑같이 따라가되 선택 교과에 연극과목과 영상과목을 편성하는 식이다.

연극·영상 수업은 학생들이 실제 연기를 하거나 영상을 촬영·편집하는 실습으로 이뤄진다. 학생들은 1년에 한 번 무대에 올라 동네 주민들에게 한 학년 동안 갈고 닦은 연기력을 선보이고, 직접 만든 영상을 교내 축제에서 공개한다.

경남 합천 대병중 학생들이 영상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대병중)
대병중이 연극·영상 특성화중으로 자리 잡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51년 11월 문을 연 대병중은 2019년까지 일반중학교였다. 그러나 이농현상으로 젊은 세대가 대병면을 빠져나가고 학생 수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대병중은 신입생 모집을 위해 내부 논의 끝에 특성화중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차별화된 교육 과정으로 신입생을 유치하자는 구상이었다. 연극·영상 특화로 방향을 잡은 것은 지역과의 연계를 고려해서다. 인근에 ‘합천영상테마파크’와 영화·연극 특성화고가 있어 진로 연계가 용이하다.

발로 뛴 교사들…대안교육 배우고 공모사업 도전

취지는 좋았지만 특성화중으로 전환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당장 학교에 대안교육을 아는 교사가 없었다. 이에 교사들은 대구의 뮤지컬 특성화중을 찾아가 대안교육 프로그램 구성부터 운영까지 전반을 배워왔다. 학교에 연극·영상 수업 공간이 없어 도서실 일부를 연습실로 개조하기도 했다. 대병중은 그렇게 특성화중의 기초적인 틀을 갖췄고 전환 준비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2020년 9월 특성화중으로 인가받았다.

교사들은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정부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각종 공모사업에도 도전했다. 수업 계획·운영 등을 적어내는 기획서를 작성하다가 늦게 퇴근하는 경우도 잦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대병중은 문화 소외 지역 학교에 예술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예술꽃 새싹학교’, 학교의 차별화 교육을 지원하는 ‘작은학교 특색교육과정 모델학교’ 등 다수의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변채원 대병중 교무부장은 “여러 공모사업을 따내면서 점차 특성화학교로서의 내실을 다졌다”고 했다.

대병중 학생들이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대병중)
입소문에 신입생 유입↑…정원 꽉 채워

대병중이 입지를 다져나가자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도 증가했다. 특성화중 전환 후 첫 신입생을 모집한 2021학년도에는 20명이 지원했지만 2024학년도에 29명으로 증가했고 2025학년도에는 정원 30명을 모두 채웠다.

대병중 3학년 정유찬 군도 연극·영상 특성화 학교라는 점에 끌려 입학을 결정했다. 정 군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영상 제작에 관심이 많았다. 정 군은 “대병중에 오고 싶다고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렸다”며 “연극·영상 수업에 참여하면서 자기표현 능력과 자신감도 많이 늘었다”고 강조했다.

같은 3학년 학생인 송은혜 양은 부모님이 먼저 입학을 권유했다. 무대 위에 서는 걸 좋아하는 송 양의 적성을 알아본 것이다. 송 양은 대병중 연극 수업에 큰 재미를 느꼈고 앞으로도 연극 분야로 진로를 이어갈 계획이다. 송 양은 “대병중에서 연극을 더 깊게 공부하면서 진로도 연극 쪽으로 정했다”며 “고등학교도 연극 특화 학교로 진학하려 한다”고 했다.

대병중은 앞으로 연극·영상 수업뿐 아니라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국어·영어·수학 교과 교육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연극·영상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과 일반고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모두 유치, 지원하기 위해서다. 제종준 대병중 교장은 “연극·영상 진로를 꿈꾸는 학생과 학업에 집중하려는 학생들을 모두 지원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더 많은 학생이 오고 싶어하는 학교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합천 대병중. (사진=김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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