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백 3초' 전기차, 달리는 흉기인가…잇따른 사망사고 이유

사회

뉴스1,

2025년 11월 18일, 오전 07:00


16일 밤 10시29분쯤 제주시 일도2동 인제사거리에서 SUV 전기차 렌터카가 도로변의 한 식당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등 3명이 크게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제주소방서 제공)2019.1.17./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인근에서 일본인 모녀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어머니가 숨지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8일 대전 도심에서는 10중 추돌 사고가 일어나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했다. 두 사고 모두 '전기차'가 사고 차량이었다.

급가속이 쉬운 전기차 특성상 운전자가 페달을 오조작하거나, 음주와 같은 인지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상대적으로 내연기관차에 비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초 만에 시속 100㎞'…조작 미숙·음주운전 땐 더 위험
18일 업계에 따르면 내연기관 차량이 속도를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과 달리 전기차는 페달을 밟는 즉시 출력이 전달돼 순식간에 속도가 붙는다. 대부분 전기차의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도달하는 시간)은 3초 수준으로, 일반 내연기관 차량(8~10초)보다 훨씬 빠르다.

즉, 전기차 조작에 익숙하지 않거나 초보 운전자라면 급가속 상황에서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술에 취한 운전자가 전기차를 모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인 모녀' 사고처럼 급가속 시 속도가 워낙 빨라 보행자가 피할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음주운전자나 고령층 운전자들이 기기 조작이나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가속페달에 대한 감각 자체가 떨어진다"면서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서 제로백이 두 배 이상 빠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가 몇 배는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전기차 특유의 주행 방식인 '원 페달 드라이빙'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내연기관 차량은 가속을 멈춰도 속도가 유지되지만 원 페달 드라이빙 모드의 전기차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감속·정지가 이뤄진다.

지난해 8월 경기 용인시 한 카페로 테슬라 전기차가 돌진해 11명이 다친 사고를 낸 60대 여성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원 페달 드라이빙에 익숙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원 페달 드라이빙 기능을 사용하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데면 '회생 제동'이 작동해 브레이크처럼 작동한다"면서 "원 페달 드라이빙이 습관화된 운전자들은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가속 페달만 밟았다 놓았다 하는 습관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경기 용인시 수지고 고기동의 한 카페로 전기차가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해 사고 현장이 통제되고 있다. 이 사고로 3명이 중상을, 8명이 경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운전자인 60대 여성 A씨는 당시 음주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2024.8.14/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전기차 100만 시대' 사고 줄이려면…"전기차 교육 강화해야"
국내 전기차 보급 속도는 빠르게 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신규 등록된 전기차는 20만 대(11월 기준)를 돌파했다. 올해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은 13.5%이며, 이 추세라면 내년 초 '전기차 100만 시대'가 열린다.

허나 전기차는 비전기차보다 사고 발생 빈도가 더 높다. 보험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전기차의 자차담보 사고 건수는 총 6만 2266건으로 집계됐다. 전기차 1만 대당 1096건으로, 같은 기간 비전기차(1만 대당 880건)보다 약 1.25배 많은 수치다.

정부가 오는 2029년 이후 제작되는 신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장착을 의무화하는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이 또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김필수 교수는 "신차에 해당 장치를 부착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고령 운전자가 모는 택시 등에 이를 추가로 탑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2029년부터 신차에 탑재한다면 10년 후쯤에야 효과를 보는데 이는 다 죽은 다음에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아무리 첨단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결국 운전은 사람이 하고 자동차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물건이기에 전기차 운전자에 대한 추가적인 안전 교육 또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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