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누구를 끝까지 데리고 가는가[문성후의 킥]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18일, 오전 08:00

[문성후 원코칭 대표코치] 요즘 회사 안개가 걷히질 않습니다. 시장도 불안하고, 실적은 흔들리고, 경영층의 메시지는 점점 짧아지고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 흔히 등장하는 말이 하나 있죠. “선제적 구조조정.” 예전처럼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부서별로 필요한 숫자만큼 조용히 줄이는 방식입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구조조정은 더욱 과감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리더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누구를 지키고, 누구를 보내야 하는가?’ 김부장이라는 드라마만 봐도 생생합니다.

많은 직원들이 평가 점수대로 인사관리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리더들은 압니다. 평가표는 초안일 뿐이고, 최종 결정은 리더가 합니다. 리더 한 사람의 코멘트가 한 직원의 생사를 가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회사는 일단 정량 지표를 기준으로 하위권을 정리합니다. 여기까지는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그다음 리더는 그 명단에 적힌 직원들에 대해 일일이 의견을 말합니다. 이 자리에서 리더가 단 한 문장만 얹어줘도 판도가 바뀝니다. “이 팀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라는 말은 ‘구명줄’이고, “함께 일하기 버거운 사람입니다”라는 말은 치명적 신호입니다. 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리더가 불편하다고 느끼면 망설임 없이 제외됩니다.

요즘 HR 시스템은 정교하고 정량적입니다. 하지만 결국 직원이 지금 하는 일이 1인분인지, 1.5인분인지, 혹은 0.5인분인지 판단하는 건 사람입니다. 사람의 판단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인터뷰 교육을 하고, 평가 기준을 다듬고, 체크리스트를 추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판단은 언제나 책상 앞에 앉은 ‘사람’의 기억과 직관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기계가 아닌 사람인 리더는 늘 조심스럽고, 동시에 책임이 무겁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리더는 모든 직원에게 따뜻할 수 없습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건 가족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조직은 목표가 있고, 속도감이 있고, 리더에게는 성과를 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과를 내야 하는 자리에서는 감정보다 현실이 앞섭니다. 예전 한 설문조사에서 부장 이상 리더 중 절반 가까이가 “지금 당장 정리하고 싶은 직원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리더는 매일 팀원을 평가합니다. 어떤 사람은 ‘함께 가야 할 사람’으로, 어떤 사람은 ‘대체 가능 자원’으로 분류합니다. 심지어 어떤 임원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스페어를 일부러 두고 있어. ‘지켜야 하는 사람’이 위험해질 때 ‘희생될 사람’은 항상 필요하니까.”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 간 사람들은 예외 없이 리더가 ‘절대 잃을 수 없다’고 판단한 직원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리더는 팀원에게 상상 이상으로 의존합니다. 부장의 성과는 팀원 5명에게, 임원의 성과는 수십명에게, 경영진의 성과는 수백명에게 의존합니다. 리더가 속으로 이렇게(“저 친구 없어지면 내가 위험해진다”) 말할 정도의 직원이 되면 그 팀원은 웬만해서는 정리 대상에 오르지 않습니다.

리더의 생존이 팀원의 성과에 달려 있듯, 팀원의 생존도 리더의 기억 속 ‘순간들’에 달려 있습니다. 평가란 결국 기억을 꺼내는 작업입니다. 좋았던 장면이 많으면 좋은 평가, 불편한 장면이 많으면 나쁜 평가, 기억 자체가 없으면 존재감이 없는 것입니다. 즉, 순간 관계가 쌓여 장기 기억이 되고, 장기 기억이 평가가 됩니다. 리더가 기억하는 장면의 질이 그 팀원의 생존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팀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리더에게도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누구를 내 아픈 손가락으로 만들 것인가.’ 이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한 리더는 위기 때 흔들립니다. 반대로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에게 조직의 미래를 맡길지 명확히 아는 리더는 위기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기일수록 리더십의 본질은 더 선명해집니다. 복잡한 전략이나 거창한 비전보다 중요한 건, 리더가 데리고 가야 할 팀원을 정확히 알고, 그 사람을 지켜내는 힘입니다.

위기일수록 리더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판단이 아니라 꾸준한 관찰입니다. 팀원의 사소한 순간의 태도, 작은 약속, 위기 상황에서의 반응, 동료와의 조율 능력,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 ‘함께 갈 사람’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리더의 생존, 그리고 조직의 미래와 직결됩니다.

지금 이 시기, 리더에게 필요한 건 복잡한 계산보다 단순한 질문 하나입니다. “지금 내 자리에서, 나는 누구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문성후 대표 △경영학박사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 △연세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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