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보호" VS "세금 낭비”…'산재 국선대리인' 논란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18일, 오후 02:20

[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정부가 산업재해 피해자를 돕기 위한 ‘산재 국선대리인 제도’ 도입을 추진하자 노무사들이 연이어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취약계층 보호라는 제도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제도 설계가 민간 전문시장 질서를 흔들고 산재 구제 절차를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재해근로자 산재 피해 법률 지원 검토

정부와 여당은 산재 신청 단계에서 법률 조력이 필요한 노동자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국선대리인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소득 300만원 이하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재해 근로자에게 국가가 대리인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다. 고용노동부는 예산안과 세부 기준 마련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회 상임위에서도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산재 국선대리인제도가 “최초 신청 단계부터 전문 조력을 제공하면 불이익 처분을 예방하고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법률지식이 부족한 재해근로자가 초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구제 기회를 놓치는 사례를 예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한국공인노무사회는 “현재 산재 사건은 착수금 없이 성공보수 방식으로 운영돼 경제적 이유로 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하는 구조가 아니다”고 반박한다. 이미 민간 전문대리 시장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국선대리인 체계를 만드는 것은 “중복 제도이자 불필요한 예산 투입”이라는 주장이다.

◇노무사회 “민간시장 침해, 도덕적 해이 조장”

노무사회는 국선제도의 낮은 보수 수준도 문제라는 주장이다. 낮은 보수는 질 낮은 대리, 저조한 실적, 제도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불이익 처분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최초 신청’ 단계부터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고, 행정 절차만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검토 중인 ‘소득 300만원 이하’ 기준 또한 논란이다. 대부분의 재해 근로자가 해당돼 사실상 광범위한 지원으로 흐르기 쉽고, 제도의 취지인 ‘취약계층 보호’와 방향이 다르다는 평가다.

앞서 박기현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은 지난 10일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어 17일에는 김명환 수석부회장이 시위를 이어가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김형동 간사,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정진욱 의원 등을 만나 노무사회 의견을 전달했고, 의원실에서는 “관련 의견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기현 회장은 “국민 세금이 비효율적으로 쓰이는 제도적 실험을 막고, 재해근로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전문가 단체의 책무”라며 “졸속 입법이 추진되지 않도록 끝까지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노동복지 선진국에도 산재 국선 대리인 제도가 없다”며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제도를 취약계층 보호 명분으로 도입하는건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결국 산재 피해 근로자가 느끼는 서비스 질이 중요한데 보수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는 국선 제도 아래서 서비스 질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명환 한국공인노무사회 수석부회장(왼쪽)과 박기현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오른쪽)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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