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7시 서울 광진구 서울50플러스 동부캠퍼스. 정장 차림의 청년들이 급하게 강의실로 들어갔다. 100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30분도 안돼서 가득 찼다. 대학생, 직장인 수강생들은 이날 ‘서울 영테크’를 통해 청년금융상품 정보를 얻고자 이곳에 모였다. “투자로 수익을 보고 있느냐”는 강사의 질문에 강의실에서는 “아니요”라는 대답과 한숨이 곳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내 수강생들은 스크린 화면 속 정보를 수첩에 깨알같이 적으면서 강의에 집중했다.
2030세대가 서울 광진구 서울50플러스 동부캠퍼스에서 금융상품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다.(사진=이영민 기자)
이달 초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4200대까지 오르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달아올랐다. 나만 자산증식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과 주식시장 과열이 맞물리면서 스스로 투자를 통제하지 못하는 중독 증상을 겪는 이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위험투자를 예방할 경제 능력을 쌓을 곳은 마땅치 않아서 교육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영테크는 청년들에게 올바른 재테크 지식을 심어주고 고위험 자산투자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2021년 11월부터 서울시가 운영한 청년정책이다. 코로나19 유행 후 청년층의 고위험 자산 투자가 확산함에 따라 안정적인 자산배분을 교육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사업은 경제 기초교육뿐 아니라 △금융사기예방 △신용평점 관리 개론 △금융상품 비교 및 분석 △채무조정처럼 실질적인 자산형성에 필요한 강의를 제공한다. 서울에 사는 만 19세~39세 청년이면 누구나 누리집에서 재테크 교육이나 무료 재무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수업을 들은 청년들은 금융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중구에 사는 직장인 양라윤(30)씨는 “우리나라는 입시경쟁 때문에 국어, 영어, 수학에 집중하는데 이런 기본적인 금융상식도 필요하다”며 “주변에서 위험하게 투자하는 선배들을 보기도 한다. 투자 중독에 빠지면 위험하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원구에서 온 민윤기(28)씨는 “빚투 사례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뉴스를 보면 나도 쉽게 빠지지 않을까 싶었다”며 “금융상식을 알고 투자를 경험하는 게 피해를 막는 데 도움될 것 같아 오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2명 중 1명, 근무 중 주식 확인…“빚투·중독 막을 교육 이뤄져야”
뜨거운 투자 관심은 빚투와 중독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만큼 조기에 경제관념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6조 2165억원으로, 2021년 9월 이후 약 4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보유한 주식 등을 담보로 자금을 빌린 뒤 아직 갚지 않은 금액이다. 이 잔고가 늘었다는 것은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증가했다는 의미여서 빚투 규모를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다.
스스로 투자 행위를 통제할 수 없어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지난 7월 공개한 ‘2024년 사행산업 관련 통계’에서 주식이나 가상자산, 확률형 게임처럼 도박 외에 사행성과 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로 상담전화(헬프라인)를 받은 사례는 2019년 887명에서 지난해 2118명으로 2.4배 증가했다. 2023년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주식 투자 경험이 있는 직장인 8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업무 중에도 주식 차트를 확인한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6명(64.9%)에 달했다. 본인이 ‘주식 중독’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항목에서는 응답자 5명 중 1명(20.9%)이 긍정했다.
책 ‘어쩌다 도박’의 공동저자인 최삼욱 진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투자 행위중독 때문에 외래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가 2~3년 전보다 2배는 늘어난 것 같다”며 “이분들은 자신이 중독에 빠졌다는 개념이 없어서 상담이나 치료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에 다닐 때부터 투자 교육이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도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수요·공급 같은 경제 이론뿐 아니라 현실에 활용할 수 있는 금융교육도 반드시 공교육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대선에서도 찾아가는 금융·노동 교육을 확대하는 등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교육을 언제든 쉽게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험한 투자 종목과 콘텐츠를 사전에 거를 교육시스템이 상당히 부족하다”며 “어릴 때부터 경제관념을 차근차근 쌓아야 하는데, 이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