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원 더 줄게”…지방의사가 ‘슈퍼맨’이라 불리는 이유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23일, 오후 05:57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최소 3명이 진료과서 일해야 하는데 해당과 전문의가 한 명뿐이다. 수많은 당직과 진료가 계속되면서 부담감이 점점 커지는데다 당직이 많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A지역필수계약의사)

“지자체가 가족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 그냥 지방 대도시에 머물기로 했다.” (B지역필수계약의사)

정부가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도입한 지역필수의사제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낙후된 근무 환경 속에 막중한 책임까지 더해지면서 젊은 의사들이 지방의료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필수의사제는 종합병원급 이상 지역의료기관에서 필수과목을 진료하며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지역근무수당과 정주 여건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제도를 통해 계약한 의사는 복지부로부터 근무수당 40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또 지자체가 계약 의사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각종 정주 지원책을 제공한다. 지난 8월 도입됐으며 강원·경남·제주·전남서 각각 24명의 필수의료과 의사를 모집해 진행한다. 다만 23일 현재 일부 지역은 아직 24명을 채우지 못했다.

2025년 3분기 전문의 현황. (그래픽=이미나 기자)
지역필수의사제에 대한 지역 내 반응은 일단 호의적이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지역필수의사제를 ‘지방 의료 인력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평가했다. 이 공무원은 “지역 내 주민과 의사들도 사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지방정부에서도 의사 가족이 지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월 100만원의 정착금과 자녀 양육비·장학금 등을 지급한다”고 소개했다. 추가 임금 지급이 지역에 의사를 붙잡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다. 무엇보다 워낙 필수진료과 의사가 없어서 계약 의사의 책임감과 업무가 막중하다. 취약지 병원은 인력이 적어 야간·주말 연속 당직이 많다. 콜백 당직(업무 시간 외에 걸려온 전화나 요청에 대해, 담당자가 근무 시간 내에 다시 연락하는 근무 형태) 대기와 실제 응급 상황 출근 등으로 상시 긴장된 상태서 업무를 계속해야 하는데, 진료가 지연되거나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계약 의사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

이는 젊은 의사들이 필수진료과를 피하는 현상과 맞닿아있다. 최근 젊은 의사들은 과거보다 돈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직을 주 2회 이상 서야 하는 곳에 손들고 가겠다는 젊은 의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계약 의사 특성상(전문의 자격 취득 후 5년 이내인 의사) 젊은 의사가 많은데, 이런 이유로 지원자가 적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수도권이야 시스템과 사람이 많으니 책임을 나눠서 질 수 있지만 지방에서는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면서 “의료 사고뿐만 아니라 진료 지연에 대한 법적 책임도 부담이 될 텐데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지원자가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지방일수록 인력과 장비의 집중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같은 7명의 의사라도 한 병원에 모이면 부담이 분산되지만 여러 병원에 흩어져 있으면 병원마다 당직을 서야 하기 때문에 당직 부담이 급증한다는 논리다. 한 중증 환자가 서울로 몰리는 건 지방에 (시스템과 인력을 잘 갖춘) 병원이 없기 때문인데 이 구조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람과 시스템을 키우는 것이 본질적 해결책이라는 분석이다. 한 지방국립대병원 교수는 “그간 정부는 보상금(급여·수당) 중심 접근만 해 왔는데 의사들이 더 중요하게 보는 건 근무 환경과 조직 지원 구조”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제도(지역필수의사제)서 지급하는 400만원 지역근무수당의 실제 수령액은 200만원 남짓인데 누가 월 200만원에 목숨 걸고 책임지려 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향후 지역의사제가 정착되기 전까지 지역필수의사제가 계속 유지되고 지역의사제와 상호보완적 관계를 설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역필수의사제가 의사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지역의사제가 지역 내 의무 근무를 보장해 지방 필수의료 육성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권병기 복지부 필수의료지원관은 “지역의사제가 도입되더라도 지역필수의사제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필수의료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다각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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