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조 교섭창구 '분리 or 통합'은 노동위 몫…노사 모두 '반발'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24일, 오후 06:59

[세종=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정부가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하청노조가 원청 사업주와 개별교섭에 나설 수 있도록 했지만 노사 모두 반발하고 나서며 현장에서 갈등이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8월 개정 노조법(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른 하청노조와 원청 사업주 간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한 후속조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창구단일화 안되면 원-하청노조 간 ‘분리교섭’ 원칙

이번 시행령 개정안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방침을 종합하면, 원청 사업주의 실질적 지배력을 받는 하청노조는 △원청노조와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하고 △이를 원하지 않을 경우 교섭단위 분리 요구를 할 수 있다. 하청노조가 복수일 경우 1곳이라도 교섭단위 분리를 요청하면, 모든 하청노조의 교섭단위가 분리된다. 하청노조가 개별적으로 원청 사업주에게 교섭 요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하청노조로선 원청노조와 교섭대표노조 구성을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하청노조의 개별교섭이 보편화할 전망이다. 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교섭단위 분리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원청노조와 하청노조 간 교섭단위를 분리한다”고 밝혔다. 현행 노조법이 ‘예외적으로’ 분리교섭을 허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청노조가 무조건 개별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청노조가 모두 개별교섭을 원해도 노동위원회가 하청노조 창구를 통합할 수 있도록 했다. 모든 하청노조를 하나의 창구로 통합할 수도, 직무 등 특성이 유사한 하청이 있는 경우 복수의 창구로 단일화할 수 있다. 교섭권을 획득한 하청노조 각각이 아무런 공통 요인이 없다면 이들 노조에 개별교섭이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그 기준을 구체화한 게 이번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이다. 하청노조 교섭권을 보장하되 교섭 효율성 또한 놓쳐선 안 된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교섭창구 단일화 및 교섭단위 분리 절차는 원청 사업주가 ‘하청노조의 사용자’라는 점이 인정될 때 비로소 진행된다. 원청 사업주에 대한 ‘사용자 판단’은 교섭창구 단일화 예비 절차(노조의 교섭 요구 및 사용자의 공고 등) 때 노동위가 20일 이내에 하도록 했다. 지금은 10일로 규정하고 있으나 하청노조와 원청 사업주 간 교섭 절차에선 2배로 늘린 것이다.

노동위의 인력 구조 등을 감안할 때 20일 안에 이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24일 브리핑에서 “사용자성 판단 기준은 어느 하나라도 인정이 되면 곧바로 사용자로 판단한다”고 했다. 하청노조가 여러 의제로 교섭을 요구해도, 판례가 많이 축적된 산업안전과 관려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이 형성된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사용자로 인정된다는 설명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내 하도급 노조에 대해선 원청 사업주가 사용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산업안전 외 교섭 의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문제”라고 했다.

◇“하청단위 창구단일화 뒤 개별교섭 허용해야”

노동부의 이날 발표에 노사는 모두 반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입장문을 통해 “하청노조와 원청사업주 간 교섭이 더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청노조가 원청노조와 창구단일화 과정을 거친 뒤 다른 하청노조들과 또다시 교섭단위 분리 및 통합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현장 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교섭에 배제되는 소수 노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입장문에서 “시행령 개정안의 교섭단위 분리 결정기준은 기존 노조법에 규정된 현격한 근로조건 차이 등을 구체화하는 수준을 넘어, 노조 간 갈등 유발 및 노사관계 왜곡 가능성까지 고려하도록 했다”며 “교섭단위 분리 기준을 확대할 경우 15년간 유지돼온 원청 단위 교섭창구 단일화가 유명무실해져 산업현장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하청사가 복수일 경우 이들 하청노조의 교섭창구를 통합할 게 아니라 하청사 단위로 통합해 원청 사업주와 개별교섭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기존 중앙노동위원회 판정과 행정법원 판결에 따라 하나의 하청사업장 내 복수노조가 있다면 하청 단위에서 창구를 단일화한 뒤 바로 원청 사용자에 교섭 요구를 가능하게 하는 게 법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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