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에 부디 사형을…” 검사도 호소한 ‘그날의 살인’ [그해 오늘]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26일, 오전 12:02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24년 11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는 여고생 A양(18)을 살해한 박대성(당시 30세)의 2차 공판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그는 살인 혐의에 대해 인정했으나 살인 예비 혐의에 대해선 부인했다.

박대성은 A양을 살해한 뒤 흉기를 든 채 호프집과 노래방 등을 들렀는데, 검찰은 홀로 영업장을 운영하던 여성들을 상대로 박대성이 2차 살해를 시도하려 한 것으로 판단했다. 즉, 연쇄 살해의 위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A양을 살해한 뒤 맨발로 돌아다닌 박대성이 CCTV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살인 각성’이라고 봤다.

순천 여고생 살해범 박대성이 범행 후 웃으며 맨발로 거리를 걷는 모습의 CCTV 화면(왼쪽). (사진=YTN, 전남경찰청)
사건은 2023년 9월 26일 오전 0시 42분쯤 전남 순천시 조례동 한 도로변에서 일어났다.

박대성은 피해자 A양을 800m 따라가 흉기로 수차례 찌른 뒤 도주했다. A양은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도중 사망했다.

그런데 박대성은 범행 뒤 신발이 벗겨지도록 도주하다 맨발로 거리를 걷다 웃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된 것.

그는 도주 과정에서도 은둔하거나 당황하는 기색 없이 호프집으로 가 맥주 반 잔을 마시고 노래방까지 들렀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박대성이 2차 살해 위험이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 또한 ‘살인 후 각성’임을 설명하며 “만족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봤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지난 10월 9일 YTN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에 출연해 “살인의 욕구가 올라간 상태에서 그것을 실행하고 그 만족감으로 자기도 모르게 미소라든가 아니면 흥분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살인 후 각성’이라고 한다”며 “그런 상태가 유지되면 다른 살인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대성은 경찰에 붙잡힌 뒤 “혐의는 인정하지만 술을 마셔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정신질환 증상을 주장했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박대성이 A양을 살해하기 전 30분간 흉기를 소지한 채 범행 대상을 물색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박대성은 사건 현장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사건 당일 소주 4병을 마신 상태에서 가게 주방서 흉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당시 가게 앞에 서 있던 박대성을 승객으로 착각한 택시 기사가 멈춰 섰고, 흉기를 자신의 몸 뒤편에 숨긴 채 태연하게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다 택시 기사는 박대성을 태우지 않은 채 떠났다.

경찰은 박대성이 흉기를 감추고 있던 점을 고려하면 택시 기사 또한 범행 대상으로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배 프로파일러는 박대성이 ‘술을 마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점을 두고 “(박대성이) 술을 먹어서 심신미약이 아니라 범행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데운 형태로 보인다”며 “폭력 전과가 여럿 있는 것을 볼 때 연속 살인을 연습했을 가능성이 있다. 박대성은 약해 보이는 존재를 피해자로 삼은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10대 여고생을 살해한 것에 대해 “(무차별 살인 사건 피해자의) 여성들이 유달리 많은 이유는 방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선택된다는 것”이라며 “그렇기에 그것조차도 어쩌면 (박대성의) 합리적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무나 살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그 택시 기사를 피해자로 선정했어야 하는데 그를 보내고 피해자를 선택했다는 건 분명 약한 상대를 고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여고생을 살해한 박대성이 호프집과 노래방 등을 들린 뒤 남성 행인에 시비를 거는 모습. 결국 행인에 제압당한 박대성은 경찰에 넘겨졌다. (사진=JTBC 뉴스 캡처)
그러면서 “(살해 후) 흉기를 갖고 다니다가 다른 남성과 시비가 붙어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선 저항도 안 한 걸 보면 두려움이나 자기보호가 강한 비겁한 형태의 남성”이라고 말했다.

박대성은 사건 발생 1시간 후 남성 행인과 시비가 붙었고 행인이 그를 힘으로 제압해 경찰에 신고했다. 행인은 “힘으로 제압하니 힘을 못 쓰더라”고 당시를 전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박대성은 양손을 내밀며 “잡아가세요”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에 넘겨진 박대성에 1심은 무기징역과 20년간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무기징역이 가볍다며 항소한 검찰은 항소심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했고, A4 용지 2장 분량의 구형 이유를 읽어 내려갔다.

검사는 “국민들은 부유하고 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에 앞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판사와 검사가 매일 야근하며 사건에 대한 방대한 기록에 빠져 사는 근본적인 이유도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며 “(그런데) 앞으로 외출할 때 일반인도 방검복이나 방탄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어 “꽃다운 나이에 꿈을 펼치지도 못한 피해자를 박대성은 개인적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10여 년이 지난 후 가석방 등으로 다시 출소할 수 있는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살인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 세상이라면 오늘의 행복을 미루고 노고를 감내하는 국민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며 사형 선고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검찰의 사형 구형에 대해 “기존의 사형 확정 사건들은 사망 피해자가 다수이고 치밀한 범행 계획이 있었거나 강도 등 중대 범죄가 결합한 형태였다”며 “이 사건에 치밀한 계획이 없어 보인다”고 판시했다.

또 “복역 기간이 20년이 지나면 가석방할 수 있겠으나 가석방 제도의 엄격한 심리를 통해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를 기각했다.

박대성 측이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하자 대법원은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의 연령·성향·환경, 피해자들과의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여러 양형조건들을 살펴보면 원심이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판결을 유지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박대성이 A양을 쫓아가던 당시 CCTV에 찍힌 모습. (사진=채널A뉴스 캡처)
박대성의 무기징역 선고에도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A양의 친구 B양은 그해 10월 4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사건 직전 A양에게서 전화가 걸려 와 “뒤에 남자가 있는데 무섭다고 했다”며 “그러다 갑자기 엄청 뛰는 소리가 들렸다. A양이 갑자기 신고해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고, A양과는 이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B양이 전화를 받은 시각은 0시 29분이었으며, 박대성이 흉기를 휘둘러 A양을 살해한 시각은 0시 44분이었으니 박대성은 약 10분간 피해자를 뒤따라간 셈이었다.

박대성의 범행 당시를 목격한 목격자 C씨도 방송을 통해 트라우마를 앓고 있음을 토로했다. 그는 “살려달라고 했는데 못 살리고 죽었다는 것이 너무 괴롭다”며 “마지막에 (A양으로부터) 살려 달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생각이 나고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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