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부면허시험장엔 고령운전자 안전교육을 수강하러 온 노인들로 북적였다. 이 곳에서 만난 이모(78)씨는 “평소 운전을 자주 하진 않지만 면허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쉬워 한 차례만 더 연장하자는 생각으로 교육을 신청했다”고 했다. 시력에 자신이 없어 거의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이씨는 “필요할 땐 가족과 함께 차를 탄다”면서도 “자가용 운전이 익숙해 버스 타러 가는 것도 힘들고 택시는 부담돼 운전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토로했다.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서부면허시험장이 대기하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김윤정 기자)
고령 운전자의 운전 사고가 잇따르면서 면허 박탈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고령자의 이동 편의성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면허 박탈을 논의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노인 이동권을 고려해 고령자 상태에 맞춘 조건부 운전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고령층의 페달 오조작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13일 4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친 부천 제일시장 사고 역시 67세 상인 A씨의 페달 오조작이 원인으로 조사됐다. 인천에서도 지난 17일 고령인 70대 운전자 B씨가 인도로 돌진해 모녀를 다치게 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경찰은 이 역시 페달 오조작을 의심 중이다. 가장 최근인 24일에는 제주 우도에서도 60대 운전자가 몰던 승합차가 보행자와 전신주를 잇따라 들이받아 3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브레이크등은 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9년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는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됐고 적성검사 기준도 강화됐지만 고령층의 교통사고는 오히려 증가세다.
◇“병원만 가려 해도 차 없이는 힘들어”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사고는 2020년 3만 1072건에서 지난해 4만 2369건으로 36.4% 증가했다. 전체 운전자 중 고령층 비율은 15%대에 불과하지만, 전체 교통사고 19만 6349건 중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사고는 21.6%에 달한다. 이는 200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이 같은 추세에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고령층의 이동권 문제를 고려하면 간단히 결정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 고령자 면허 갱신을 위해 교육장을 다시 찾았다는 김모(79)씨는 “병원만 가려고 해도 차 없이는 너무 힘들다”고 했다.
면허 박탈론은 생계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20년간 택시를 운전한 후 지금은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는 김모(76)씨는 “회사에도 80살이 넘어서 운전하는 분들이 있다”며 “회사에서 건강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 후 운행하도록 하지만 면허를 아예 박탈하면 이들의 생계가 곤란해질 것”이라고 했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율은 매년 2%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어려움을 방증한다. 지난 8월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면허를 반납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고령 운전자들은 그 이유로 ‘자유로운 이동 불가(58%, 복수 응답)’, ‘병원 방문 등 일상생활에서 운전이 필수적이어서(54%)’ 등의 이유를 꼽았다.
현실적 대안으로는 특정 조건에서만 운전을 허용하는 ‘조건부 면허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운전 면허를 단순히 나이 기준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질환 상태에 따라 운전 가능 범위를 세분화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며 “미국의 경우 문진을 통해 질환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주간에만 운전을 허용하거나, 면허 갱신 뒤 정기 문진을 통해 면허 유지 여부를 재검토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한국도 이러한 제도적 보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