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 남용' 임종헌, 2심도 징역형 집유…"사법 공정·중립성 훼손"(종합)

사회

뉴스1,

2025년 11월 27일, 오후 04:08

‘사법농단’ 의혹으로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2심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11.27/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심에서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2-1부(부장판사 홍지영 방웅환 김민아)는 2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유죄→무죄, 무죄→유죄…1심과 달라진 부분은
재판부는 법원행정처 개입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허위 해명자료를 작성·행사했다는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1심과 달리 '해명 내용 요약' 부분이 삭제되지 않은 점 등에 비춰보면 임 전 차장에게 행사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해명자료 수정본 파일이 출력되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무죄로 판단했다.

현금성 경비 마련을 위해 기획재정부 공무원을 기망해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이 반영된 예산안을 편성하도록 해 예산안 심사에 관한 국회의원들의 직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예산의 편성 및 확정 업무는 신청서 기재 사유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전제로 심사·판단하는 것에 해당하는 점, 예산편성 담당 공무원이 예산의 필요성, 규모의 적정성 등에 대한 심사를 하지 않은 점,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아무런 질의나 조사가 없었던 점 등을 관련 법리에 비춰 볼 때 원심과 달리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1심에서 무죄로 판단했지만 2심에서 유죄로 뒤집힌 부분도 있다.

2심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 가면 판매를 중지시킬 법적 압박 수단을 검토해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것은 박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정보나 자료를 제공하려는 현실적인 의도 아래 법률 자문을 제공할 목적으로 법적 검토·작성을 지시한 것으로서 직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봐 유죄로 판단했다.

또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제재하거나 위축시키려는 목적으로 그 방안을 검토해 보고서를 쓰도록 지시한 것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을 편성 목적과 달리 각급 법원 법원장들과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대외업무활동비로 집행하도록 지시한 것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만 인정한 1심과 달리 2심은 특정범죄사중처벌법위반(국고등손실)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1심은 대전지법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 집행 관련 허위공문서작성 등에 대해 지급명세서의 영수인 부분이 허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지만, 2심은 지급명세서의 내역란 기재가 허위이므로 전체적으로 허위라고 봐 유죄 판단을 내렸다.

"사법부 정책 목표에만 몰입해 원칙과 기준 위배해 직무 수행"
재판부는 "피고인은 약 3년간 행정처 기조실장으로 재직하며 국회, 행정부처 기타 대외관계 업무, 예산 편성·배정·결산 등 업무를 수행하고, 약 1년 7개월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재직하면서 사법행정사무 일체에 관해 처장을 보좌해 법원행정처의 업무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남다른 열정과 추진력으로 장기간 사법행정사무를 수행했으나, 사법부의 정책 목표와 추진 현안이 시급하고 절박하다는 점에만 몰입한 나머지 원칙과 기준을 위배하여 직무를 수행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저지른 범행은 법관들이 다른 국가권력이나 내·외부 세력의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다해야 하는 본분을 망각하고 사법부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법부가 어렵게 쌓아 온 신뢰를 훼손시키고 법원 구성원들에게 큰 실망과 충격을 안긴 데 대해 무한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다"며 "이 사건으로 500일 넘게 구금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정상과 범행 동기, 수단, 결과, 범행 정황 등 양형 조건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실장, 차장으로 근무하며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 일선 재판에 개입하고 법원 내 학술모임을 부당하게 축소하려 한 혐의 등으로 2018년 11월 기소됐다.

앞서 1심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관련 사건 및 홍일표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등 특정 국회의원 사건의 검토를 심의관에게 지시한 것과 현금성 경비를 지원하기 위해 공보관실 예산을 불법으로 편성해 다른 용도로 유용했다는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검토 지시는 사법부 독립뿐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해할 수 있는 중대 범죄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질타했다. 또 예산 유용 혐의에 대해서도 "국가 재정을 축내고 피해를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이라고 밝혔다.

다만 강제징용 재판 및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개입,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로 법관 인사에 부당한 영향을 끼친 혐의 등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초기에 제기됐던 대부분 혐의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임 전 차장과 마찬가지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7·사법연수원 2기)과 고영한(70·11기)·박병대(67·12기) 전 대법관의 2심 선고 기일은 내년 1월 30일 오후 2시로 연기됐다.

sh@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