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중 유일한 미가입 '부다페스트 협약'…법원 아직 '소극적'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28일, 오전 09:46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사이버범죄 대응에 관한 국제협약(일명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의 전제조건인 ‘보전요청 제도’ 도입을 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협약 가입을 위한 이행입법이 본격 궤도에 오를지 주목된다.

부다페스트 협약은 국제 사이버범죄 수사공조를 위한 다자협약으로 현재 미국·일본·호주 등 67개국이 가입해 있다. 우리나라는 G20(주요 20개국)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미가입 상태다. 이 협약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보전요청 제도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 최근 몇년새 N번방 사건과 딥페이크 범죄 등 새로운 디지털 범죄가 급증하면서 국제 공조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어왔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28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조배숙(국민의힘)·김한규(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두 법안 모두 디지털 증거의 신속한 보전을 위한 ‘보전요청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법무부와 여야 의원들은 입법 필요성에 이견이 없었다. 이진수 법무부 차관은 “디지털 성범죄 등 사이버범죄 관련 증거가 대부분 해외에 소재해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이 시급하고, 이를 위한 보전요청 제도 신설에 적극 공감한다”고 말했다.

조배숙 의원은 “텔레그램, 트위터 등 해외 서버를 이용한 범죄에 대응하려면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이 필수”라며 “협약에서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보전요청 제도”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김기표·이성윤 의원도 입법 방향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법원 “취지 공감하나 특정범죄 한정 검토 필요”

다만 세부 내용을 두고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배형원 법원행정처 차장은 “보전요청 제도 신설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모든 범죄에 적용하기보다 N번방이나 딥페이크 같은 특정 범죄로 범위를 제한해서 검토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견이 있다”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와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진수 차관은 “부다페스트 협약은 특정 범죄 유형을 한정하지 않고 사법당국의 판단에 맡기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협약 내용과 다른 국가의 이행입법 현황을 더 검토해보고 의견 드리겠다”고 답했다.

보전기간도 쟁점이다. 조배숙 의원안은 60일(30일 1회 연장 가능), 김한규 의원안은 90일(20일씩 2회 연장 가능)로 각각 규정했다. 법무부는 “통신사업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했다”며 “60일 범위 내에서 보전을 하되 30일 한 차례 연장하는 안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남용 우려가 있는 만큼 요건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김기표 의원도 “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실무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사이버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 (단위: 건, 자료: 경찰청 ‘사이버범죄통계’, 법사위 검토보고서)
◇18대 국회부터 4차례 발의했으나 번번이 무산

보전요청 제도는 제18대 국회부터 제21대 국회까지 4차례에 걸쳐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당시엔 보전 주체를 법원으로 할 것인지, 검찰로 할 것인지를 두고 법무부와 법원의 입장 차이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는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명확히 인정했다. 보고서는 “전자정보는 눈에 보이는 형체가 없어 증거훼손이 용이하고, 원격으로 쉽게 변경·삭제가 가능하다”며 “증거수집 전 단계에서 긴급보전의 필요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특히 사이버범죄 검거율이 2019년 73.4%에서 2023년 57.1%로 지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입법 근거로 제시했다.

◇“다음 회의서 소위 통과 목표”…법무부가 수정안 마련

김용민 소위원장은 “법무부가 법원행정처, 전문위원과 충분히 협의해 다음 회의 때 수정안을 만들어달라”며 “이를 전제로 다음 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조배숙 의원도 “처리하자는 데는 다 의견을 모은 것이니 구체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하게 다듬어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법무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3개월 내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미국, 일본, 호주 등 67개국이 가입한 이 협약은 24시간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면 하루, 늦어도 1주일 내 디지털 증거 보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2년 10월 협약 가입 의향서를 제출했고, 2023년 2월 가입 초청을 받은 상태다. 이행입법만 완료되면 G20 국가 중 거의 유일한 미가입국 지위에서 벗어나게 된다.

최근 5년간 사이버범죄 검거율 (단위: %, 자료: 경찰청 ‘사이버범죄통계’, 법사위 검토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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