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매장 절도 CCTV 공개된 여고생 사망 "어떻게 다녀"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28일, 오후 09:24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무인점포에서 물건을 훔친 여고생이 범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캡처본이 지역사회에 확산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사망했다. 캡처본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았고 학생들 사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며 신상 정보가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기사와 무관한 사진. 사건과 다른 무인점포 범행 때 경찰이 확보한 증거 사진이다. (사진=서울경찰청 유튜브 캡처)
28일 한국NGO신문에 따르면 지난 9월 23일 충남 홍성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2학년 이모(18)양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양은 사망 전 학교 인근 무인점포에서 아이스크림을 2~3차례 절도한 행각이 알려져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직전 이양이 친구들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눈 대화를 살펴본 결과 이양은 “돈이 없어서 할인점(무인점포)에서 물건을 훔쳤다”며 훔친 금액은 “5000원 정도”라고 털어놓은 사실이 확인됐다.

문제는 매장 업주가 이양이 아이스크림을 훔치는 장면이 찍힌 CCTV 캡처본을 평소 알고 지내던 공부방 대표에게 건네면서 일파만파 확산했다.

공부방 대표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해당 캡처본을 공유하며 “(누군지) 알아봐라. 아이스크림 절도범이니 찾아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캡처본은 모자이크 처리가 안 된 상태였고 이양은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얼굴을 알아볼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흔히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안다’고 하는 좁은 지역 사회 특성상 이양의 오빠는 물론 당사자에게까지 해당 사진이 전달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양의 오빠는 그가 숨지기 전날 밤 이 같은 사실을 어머니에 알렸다. 어머니는 무인점포 업주에 연락을 취해 이튿날 만남을 갖고 문제 해결을 논의하기로 했다.

가족과 친구들에 범행 사실이 드러난 이양은 밤새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양은 다음 날 아침 숨진 채 발견됐다.

이양이 사망 전까지 친구와 나눈 대화를 보면 그는 “어떡하지, 아, 심장 떨려. 몇 배 물어야 한다는데” “뒤에서 수군거리고, 소문을 내가 어떻게 감당을 해”라며 많은 걱정을 토로했다.

특히 “홍성에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냐. 학교에 다닐 수가 없다”며 사망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도 해 친구들이 적극 말리기도 했다는 게 이양 측 변호사 입장이다.

유가족들은 지난달 14일 무인점포 업주를 개인정보법 위반과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공부방 대표를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홍성경찰서에 고발했다.

이양 아버지는 “딸이 불법 유포된 CCTV 영상 사진으로 인해 한순간에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됐다”며 “극심한 절망감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호소했다.

그는 “딸이 느꼈을 절망과 두려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막힌다”며 “아이의 핸드폰 속 마지막 문자를 보며 매일을 눈물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엄벌을 요구했다.

최근 이와 같이 무인점포 업주들이 절도범으로 의심되는 손님의 얼굴을 매장 내에 게시하는 등 공개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얼굴 공개는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와 명예훼손을 초래해 법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현행법상 개인의 얼굴을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것은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실제 지난 2022년 11월 7일, 인천 중구 소재 무인점포에서 ‘포켓몬 카드’ 등을 훔친 아이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출입문에 게시한 40대 점주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 (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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