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명 목숨 앗아간 대가는 '사면' [그해 오늘]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29일, 오전 12:03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아랍에미리트, 태국을 경유해 김포국제공항에 도착 예정이던 KAL858편 여객기가 인도양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돼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시 북한 특수공작원 김현희가 액체 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는 조사 결론이 나왔으나 폭파범 김현희가 곧장 사면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정황들의 연속으로 오늘날까지도 정확한 실체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은 사건으로 남아있다.
압송되는 김현희
사고 당시는 전두환 정부 말기로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 열리게 된 대선을 보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여당에 유리한 선거 국면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조작 사건을 만들었거나, 북측 테러를 알고도 방임했다는 음모론들이 나오기 쉬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정부의 사고 수습 대응부터 소극적이었다. 조사단은 인력도 부실했고 추락 위치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엉뚱한 곳을 수색하기도 했으며, 장비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그마저도 열흘만에 중단하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당연히 동체나 파편, 피해자들의 유류품 등은 확인되지 않았고, 사건 2년 뒤인 1989년에야 기체 파편이 발견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하필 폭파 사고의 증거에 딱 맞는 파편이었던데다 이후 서둘러 폐기돼 버려 더욱 의심을 샀다.

유류품도 못건졌으니 폭파 증거가 될 폭발물 등 실물 증거도 없었다. 액체 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는 공소 내용은 순전히 검거한 폭파범들의 자백을 토대로 추론한 내용일 뿐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폭파범이라며 검거해 기소한 뒤 사형 판결까지 받은 북한 공작원 김현희를 사면한 점이었다. 대통령이 된 노태우가 음모론을 막고 북한 정보를 더 캐기 위한 목적으로 사면을 했다는데, 수감 상태에서 김현희의 사형 집행만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을 구태여 사면해 100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자가 자유의 몸이 되도록 해 준 것이다.

그 덕에 김현희는 ‘회심자’가 돼 정부 선전활동에 동원되고 TV까지 얼굴을 비추는 기괴한 상황이 벌어졌다. 가족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 유족들이 정부 조사를 불신하고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대구MBC 캡처
이후 정부에서 이어진 몇차례의 진상 조사를 통해 북측 공작으로 비행기가 폭파된 것은 사실이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당시 안기부가 사건을 여론 조성에 적극 활용한 이른바 ‘무지개 공작’을 벌였다는 점도 확인돼, 사건이 당대의 정치적 동기와 결부됐다는 의심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던 것도 확인됐다.

여기에 2020년 2월 사고 기체로 추정되는 잔해가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서 발견되면서 사건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32년만의 동체 발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이 사건의 공식적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또 미얀마 내부 쿠데타와 코로나 등으로 동체 재수색 등에는 기약이 없는 상황이나 진상 규명을 원하는 유족들의 여망도 미약하게나마 이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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