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보호 명분 280km 전보…법원은 "부당 전보"[별별법]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1월 29일, 오전 09:00

[강서영 법무법인 원 변호사] 실무 현장에서는 종종 전보 조치를 ‘문제 해결’의 가장 빠른 방법으로 인식한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를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조직 입장에서 일차적인 대응 수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조치가 실질적으로 징계에 준하는 불이익으로 작용한다면, 아무리 피해자 보호라는 명분이 있어도 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강서영 법무법인 원 변호사. (사진=원 제공)
최근 한 판결에서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돼 약 280km 떨어진 지역으로 전보된 직원의 ‘부당 전보’ 주장을 받아들였다. 조직은 ‘피해자 보호’를 위한 분리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법원은 해당 전보가 업무상 필요성에 비해 과도한 생활상 불이익을 초래했으며 절차적 정당성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전보 이전에 충분한 협의가 이루어졌는지, 수도권 내 다른 대안은 검토되었는지, 해당 조치가 결국 특정 직원을 조직에서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 것은 아닌지 등 복합적인 요소를 따져본 결과였다.

이 판결은 인사권 행사에서 흔히 간과되는 중요한 원칙을 다시금 일깨운다. 사용자의 인사권은 전적으로 자유롭지 않으며, 실질적 불이익 여부가 핵심 쟁점이라는 점이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는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조치 간의 균형이 특히 중요하다. 분리라는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이 과도하거나 정당한 절차 없이 이뤄진 경우, 법은 이를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이런 사건을 실무에서 접하다 보면 조직이 ‘선한 의도’만으로 충분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괴롭힘 대응은 단순한 선의의 문제를 넘어 피해자 회복과 조직 신뢰 회복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다. 기업이나 기관이 인사권을 행사할 때에는 그 적법성과 정당성, 절차적 투명성을 모두 갖추어야 하며, 가해자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절차적 권리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자 보호를 명분으로 한 조치가 오히려 또 다른 인권 침해, 나아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의 ‘분리’는 그 자체로 제재가 아니라 예방적 조치다. 따라서 전보·배치전환 등의 방식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생활상 불이익, 경력상 손해, 절차적 불투명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되어야 한다. 조직은 단순히 공간을 띄우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로 피해자의 안전과 회복,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조치가 균형 있게 이뤄지는 방향으로 대응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인사권 행사의 ‘의도’보다 ‘수단’과 ‘절차’의 정당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다.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분리 조치가 오히려 조직의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기업은 이제 더 정교한 대응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강서영 변호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2회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로스쿨 방문학자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현)부산여성가족과 평생교육진흥원 자문위원 △(현)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현)법무법인 원 소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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