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나노바나나
이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자. 피고인 A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수십 년간 거주하며 사과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었다. 국방부는 군부대 이전을 위해 2018년경 A씨의 땅과 집을 수용했고 이에 대한 보상금을 법원에 공탁했다. 법적으로 부동산의 소유권은 국가로 넘어갔다. A씨는 법에 따라 이주대책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국가는 A씨에게 단순히 돈만 쥐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사 가서 농사를 짓고 살 수 있는 이주단지(택지)를 조성해 분양해 주기로 약속했다.
문제는 속도였다. A씨가 집을 비워줘야 할 시점인 2020년 말까지도 약속된 이주단지는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구체적인 실시계획 승인은 커녕, 분양 공고조차 없었다. A씨는 “보상금만으로는 현재의 생계 수단을 유지하며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어렵다”며 퇴거를 거부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비록 사업 지연이라는 참작 사유가 있어 벌금형의 집행유예로 선처하긴 했으나 보상금을 수령했고 소유권이 넘어갔으니 인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인도 거부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았다. 이 판결의 핵심 논거는 예견 가능성의 부재와 기본권 침해의 최소화다.
A씨는 이주대책대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정작 자신이 이사 갈 땅이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언제 생길지 전혀 알 수 없는 깜깜이 상태에 방치돼 있었다. 주거와 직장(농업)이 일체화된 생활 터전을 송두리째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책 없이 나가라는 것은 개인에게 가혹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주거권이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인도를 거절한 것을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행위로 인정한 것이다. 게다가 피고인의 인도 거절로 공익사업 전체가 중대한 차질을 빚지도 않았다.
이 판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21년의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0도15670 판결)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대법원은 재개발 구역 내 세입자가 주거이전비와 이사비를 지급받지 못해 퇴거를 거부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토지보상법상 손실보상은 토지 대금뿐만 아니라 실제 이주에 필요한 부대 비용까지 포함한다는 취지였다. 즉, 돈(이주비)을 다 주지 않으면 나갈 의무도 없다는 동시이행 의무를 확인한 사건이었다.
이번 2025년 판결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2021년 판결이 돈(금전적 보상)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판결은 이주 대책에 주목했다. 설령 보상금을 다 받았다 하더라도 국가가 약속한 이주단지가 조성되지 않아 쫓겨나면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다면, 그 인도 거절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행정 절차의 지연 책임을 힘없는 개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법은 약속이다. 국민이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업시행자는 단순히 보상금을 공탁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A씨와 같은 이주대책대상자에게는 실질적으로 이주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 줄 의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