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대체 어디까지 털린거야"…불안한 시민들, 집단소송 나선다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2월 01일, 오후 05:12

[이데일리 방보경 김지우 김현재 성가현 기자] “집 주소에 공용 비밀번호까지 털렸다는데 너무 겁이 나네요.”

국내 최대규모의 이커머스 기업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후폭풍이 일파만파다. 특히 기본적인 회원의 정보뿐만 아니라 집 주소나 주문정보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정보까지 유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실제 쿠팡을 사칭한 범죄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쿠팡 회원 탈퇴와 같은 소극적인 방식 뿐만 아니라 집단소송(공동소송)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미 복수의 집단소송 커뮤니티가 형성됐을 뿐만 아니라 법률사무소들도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책임감 있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 1위 업체인 쿠팡에서 3천만건이 넘는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30일 서울 시내 쿠팡 차량 차고지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이사를 할 수도 없는데, 어쩌나”…극에 달한 시민 불안

1일 이데일리와 만난 소비자들은 쿠팡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에 한결같이 불안감을 드러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서모(28)씨는 “이름, 주소, 전화번호는 쉽게 바꿀 수도 없는 개인정보”라면서 “이번 사태 때문에 집을 옮길 수도 없지 않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서씨는 “쿠팡에 등록한 결제수단은 삭제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다”며 “SK텔레콤(017670)과 롯데카드 등 과거 해킹 사태에서도 처음에 유출된 정보가 별로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결제정보까지 유출됐다고 했다. 이에 대한 대응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약 3379만개 고객 계정에서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배송지 주소, 일부 주문 정보 등이 무단 노출됐다고 밝혔다. 결제정보나 신용카드 번호, 로그인 정보는 유출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일상생활과 밀접한 개인 식별 정보가 대규모로 새어나간 사실이 확인되면서 2차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객의 주문내역과 아파트 공용현관 비밀번호 유출 등 범죄 악용 가능성이 큰 정보까지 유출 대상이 되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큰 상황이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정모(30)씨는 “혼자 사는 여성 입장에서는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유출됐다는 소식이 가장 무섭다”면서 “통신사 해킹에 이어 쿠팡까지 개인정보가 유출되니 허탈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일단 ‘탈(脫) 쿠팡’을 선택하는 고객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노모(32)씨는 “(정보유출 사태를 알게 된 후) 결제 정보와 집 주소를 모두 삭제하고 와우멤버십을 해지했다”며 “앞으로 쿠팡은 이용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모(39)씨도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 입장에서 (음식 재료를 빠르게 받을 수 있는) 쿠팡프레시가 꼭 필요한 서비스”라면서도 “악용될지 모르는 정보가 다 유출됐다고 해 진짜 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동현관 비밀번호도 다 바꿨지만 너무 불안하다”며 “조금 비싸더라도 대체 플랫폼을 이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8일 국제전화로 쿠팡 결제내역 안내 전화를 받은 이모씨의 통화기록 (사진=독자 제공)
◇“안녕하세요 쿠팡입니다”…곳곳서 피싱 의심 정황

쿠팡 측에서는 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는 없다고 하지만 쿠팡의 개인정보를 활용한 범죄 정황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이모(53)씨는 지난달 27일 쿠팡페이를 사용한 후 전화번호 006으로 시작하는 국제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이씨가 받은 전화에서는 “안녕하세요. 쿠팡에서 10만원이 결제됐습니다”라는 인공지능(AI)으로 의심되는 음성이 들렸고 이씨는 수상한 낌새에 얼른 전화를 끊었다. 이씨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국제전화로 어떻게 계좌에서 10만원이 결제된 걸 알았는지 의문”이라며 “쿠팡과 연결된 카드와 은행계좌를 모두 삭제했다”고 전했다.

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쿠팡 앱에서 ‘내정보-보안 및 로그인’을 확인했더니 자신이 사용한 적 없는 지역 혹은 알 수 없는(Unknown) 지역에서의 로그인 기록이 있다는 후기도 올라오고 있다. 쿠팡은 공지를 통해 “현재까지 2차 피해는 보고된 바 없다”면서도 “이번 상황을 악용한 쿠팡 사칭 전화, 문자 메시지 등에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로그인 관련 사건은 고객 앱에서 보여지는 로그인 기록과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역시 지난달 29일 “추가적인 개인정보·금전 탈취 시도가 우려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며 대국민 보안 공지를 내기도 했다.

◇“거대 기업 상대 위해 뭉쳐야”…집단소송 움직임 본격화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쿠팡에 대한 집단소송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 기준 개인정보 유출 피해 네이버 카페는 19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은 13개가 각각 개설돼 개인정보 노출 피해 회복을 위한 집단소송을 계획 중이다. 여러 법률사무소도 나서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가장 많은 가입 멤버를 보유한 집단소송 카페(‘쿠팡 해킹 피해자 집단소송 카페’)는 7만 1000여명 규모로 카페 게시판에는 실시간으로 집단소송 참여 의사를 밝히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해당 카페 운영진은 “우리가 거대 기업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무기는 바로 피해자 규모”라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다른 커뮤니티에도 수만명의 피해자가 모이고 있다.

집단소송 의사를 밝히고 있는 쿠팡 고객들은 “불안함 해소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 돕고 싶다”, “쿠팡의 안일한 정보 관리에 다시 한 번 화가 난다. 제대로 처벌받길 원한다”, “무책임한 대기업 타도하자” 등의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피해 회복을 위한 집단소송 움직임이 시작됐다.

김경호 법률사무소 호인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출된 정보의 종류와 실제 2차 피해의 부재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인 인용 금액은 피해자 1인당 10만원 내외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이는 소액이나, 피해자 규모가 방대하므로 집단소송 진행 시 쿠팡 측에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로피드 법률사무소와 번화 법률사무소 등에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해킹 사고가 아닌, 기업의 보안 불감증이 빚어낸 ‘인재’라고 규정하면서 “3379만명의 개인정보가 5개월간 무방비로 방치되었음에도 쿠팡측은 이를 단순 노출이라 주장하며 사태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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