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약가 개편, 동네 의원 울상인 이유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2월 01일, 오후 07:28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고한 약가제도 개편안을 두고 동네 병·의원이 불안해하고 있다. 동네 병·의원이 주로 처방하던 복제약이 시장에서 사라지면 약을 바꿔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환자 부작용 발생 등이 우려될 수 있다는 이유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동네 병·의원은 이번 개편안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는 제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년 내에 복제약 가격을 현재보다 20%가량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정부는 효과가 불분명하지만 많이 처방하는 약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비급여로 전환하거나 시장에서 퇴출할 계획이다.

동네 병·의원계에서는 만성질환자가 매일 쓰던 약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만성질환자는 한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약품의 생산이 중단되거나 건강보험급여에서 제외되면 갑작스레 약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약 교체에 따른 환자 부작용 등 위험이 있어 의료진에겐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관계자도 “제약사 입장에선 복제약 약가가 떨어지면 타산이 맞지 않는 약을 일괄 정리할 것”이라며 “의사가 쓸 수 있는 약도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정부가 필수의약품 원가를 상향해 보장한다는 계획도 의료계에서는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필수의약품과 퇴장방지의약품 등은 원래 수익성이 낮은데 원가와 일정 수준의 금액을 더 준다고 생산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소아용 해열제나 항생제 시럽 등 소아용 의약품에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환절기에 이러한 약 수급 불안정 현상이 되풀이되는데 정부의 원가보장이 좀 늘어난다고 해서 생산·보관이 까다로운 소아용 의약품을 생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개편안이 의약계에 긍정적인 영향도 끼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개편안으로 불법적인 리베이트가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약업체 한 관계자는 “복제약은 브랜드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약”이라면서 “판매량을 늘려야 하는 제약사와 영업사원, 의약품 판매대행(CSO) 입장에선 불법적인 리베이트 제공을 해야 하는 유혹이 있다. 약값이 너무 떨어지면 리베이트 제공이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사와 무관함(사진=픽사베이)
또 대형병원 의료진은 이번 제도 개편으로 혁신신약과 희귀질환 치료제가 좀 더 빨리 국내로 들어올 수 있어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개편안은 좀 더 비싼 신약을 빠르게 도입하는 방안이 대다수다. 가격표시를 비싸게 하고 실제 거래 가격을 싸게 해 제약사와 약 가격 협상을 좀 더 원만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전보다 더 비싼 신약도 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 혈액종양내과의 한 교수는 “새로운 기전의 희귀질환 신약과 항암제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늦어져 환자들이 비싸게 비급여 치료를 받거나 치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러한 경향이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연착륙을 위해 면밀한 제도 설계와 실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장성인 건강보험정책연구원장은 “정부는 환자를 중심에 둔 약가제도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제도를 설계했다”면서도 “의약품 재평가 등 일부 계획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계도 환자 처지에서 불리하거나 위험한 부분이 없는지 자세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신약 접근성 개선이라는 큰 방향은 좋지만 세부 실행 방안에서 현장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의견수렴 과정에서 실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