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초 범행 직후 소방서에 “아내가 머리를 다쳤다”고 신고했으나 결국 살해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내 대형 로폄의 변호사였던 그는 왜 아내를 살해한 것일까.
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 A씨가 2023년 12월 6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현장은 참혹했다. B씨 주변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방에는 비산 혈흔(혈액이 공기 중에 날아가 흩뿌려진 형태)이 뿌려져 있었다. 이는 폭행 등 강한 외부 충격이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집 안엔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기에 경찰은 B씨를 용의자로 긴급 체포했다. 곧 B씨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뒤 국내 최고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라는 사실과 함께 전직 다선 국회의원의 아들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그는 범행 직후 국내 로펌을 퇴사했다.
당초 A씨는 “정확히 무슨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가 “아내가 먼저 고양이를 발로 밀치고 자신을 때려서 반사적으로 고양이 장난감을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고양이 장난감은 플라스틱과 쇠 파이프가 연결된 형태로, 그는 쇠 파이프로 B씨를 폭행한 것이다.
이후 A씨는 검사 출신 전직 국회의원인 부친을 포함한 변호사 3명을 대동한 가운데 “고의가 없는 우발적인 상해치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현장을 분석한 과학수사관과 B씨의 시신을 부검한 법의학자는 의도적인 살인이라고 봤으나 1차 공판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재판은 4차 공판까지 이어졌다. 지속적으로 상해치사를 주장하던 A씨의 상황은 5차 공판에서야 반전됐다.
피해자의 유가족이 휴대전화 잠금을 풀고 40분 분량의 녹음 파일을 공개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것이다. B씨가 이혼을 결심한 뒤 A씨와 만날 때마다 한 녹음 파일이 살인의 결정적 증거가 됐다.
당시 B씨는 이혼 소송을 제기하고 딸의 짐을 가져가기 위해 10분 거리에 있는 A씨 집으로 들어왔다. 이후 집에 들어온 지 2분 30초 후 A씨가 가격하는 소리와 함께 B씨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9살 아들이 무슨 일인지 묻자 B씨는 신고해달라고 부탁했지만 A씨는 아들에 “문 잠그고 방에 들어가 있어”라며 소리쳤다.
그렇게 첫 가격 5분 후 B씨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으나 A씨를 향해 “그러다 감옥에 간다”고 소리치는 아들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그러나 A씨는 아들에 “엄마가 먼저 공격했다”고 변명하며 B씨의 목을 졸랐다. 이후 B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범행 뒤 A씨는 자신의 부친에 먼저 전화를 걸었고 부친의 “119를 부르고 피해 있으라”는 조언을 따른 A씨는 B씨를 30분간 방치했다.
A씨가 B씨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폭행할 때 썼던 쇠 파이프가 달린 고양이 장난감. (사진=KBS 스모킹건 캡처)
이들이 갈등을 겪기 시작한 것은 결혼 초기인 2013년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국제 원조 기구에서 일하며 해외 출장이 잦고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A씨는 자신보다 급여가 적은 B씨를 비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B씨가 바쁘다는 이유로 양육을 못한다며 2018년에는 B씨와 협의도 없이 자녀들만 데리고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또 B씨의 불륜을 의심하며 성병 검사를 받아보라는 문자를 보냈고, 뜬금없이 영상통화를 걸어서 현관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3개월 통화내역을 뽑아 오라고 하는 등 A씨의 집착은 더욱 심해졌다. 직장으로 수차례 전화해 B씨가 자리에 있나 물어보고, 통화한 직장 동료에게 아내 험담을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B씨는 아내를 모욕하는데 자녀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자녀들에 “엄마가 본인밖에 몰라서 따로 사는 것”이라며 “너희를 사랑하지 않아 일만 하는 것”라고 말한 뒤 ‘마녀 엄마’라고 부르게 하기도 했다. 아울러 아이들이 엄마에 대한 욕설을 하도록 유도해 이를 녹음하도록 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1심은 A씨에 징역 25년을 선고했고, 2심도 원심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범행 최초는 우발적이었다고 해도 그 후 계속된 잔혹한 가격과 방치 등은 ‘반드시 살해하고 말겠다’는 강력한 살해의 실행인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하는지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지난 4월 25일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