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전문가들은 정년연장 제도 개편을 논의할 때 임금체계·직무체계 개편, 연금개혁, 중소기업 대책, 청년고용 전략, 재고용 제도 정비 등을 결합한 ‘패키지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년연장은 단순한 연령 상향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대환 일자리연대 명예대표(전 노동부 장관이자 전 노사정위원장)와 정진호 전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 윤동열 건국대 교수,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 황용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등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통일로 KG하모니홀에서 열린 ‘제3회 좋은 일자리 포럼’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각 경제주체의 시각과 현실적 대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이재갑 수원대 석좌교수(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8일 서울 중구 서소문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열린 ‘2025 제3회 좋은일자리포럼’에 기조발제자로 나서 정년연장이 ‘세대 간 대체효과’를 재현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60세 정년 의무화 직후 55~64세 고령층 고용률은 51.8%에서 63.0%로 증가했지만 청년 고용률은 오히려 하락했다”며 정년이 늘어날수록 기업의 신규채용 여력이 줄고 청년층의 진입문턱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AI·자동화 충격과 맞물린 현재 상황은 더 복잡하다. 이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도 AI 도입 기업의 청년고용이 감소한 것으로 확인된다”며 “정년연장까지 겹치면 청년 일자리 축소 위험은 더 커진다”고 했다.
연공급 임금구조는 정년연장 충격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임금 정점이 50세 전후에 형성돼 고령근로자 임금이 높게 유지되는 구조여서다. 임금피크제를 운영하는 기업은 23.9%에 불과하며, 중소기업의 71.4%는 “정년 65세 도입 불가능”하다고 답했으며 가장 큰 이유로 “인건비 부담 증가(82%)”를 꼽았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정년 제도 자체가 ‘정규직 중심의 보호장치’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정년 65세 도입 시 혜택은 상위 집단에 집중되고, 오히려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는 제도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한다”며 “정년연장은 특정 계층만 이익을 보는 불균형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정년연장이 연금개혁 실패를 노동시장에 떠넘기는 구조로 변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65세 정년연장을 추진하는 가장 큰 명분은 ‘60세 정년과 65세 연금 지급 사이의 소득공백’으로 이 교수는 이 공백의 실체와 비용 부담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63만원 수준, 공공기관 종사자도 평균 200만원 정도다. 반면 기업이 60세 이상 정규직을 유지할 경우 부담해야 하는 평균 임금은 570만~700만원으로 추정된다. 이 교수는 “70만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업에 700만원을 부담시키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 “AI·자동화에 정년연장까지…청년고용 엎친 데 덮친 격”
김대환 일자리연대 명예대표(전 노동부 장관·전 노사정위 위원장)이 좌장을 맡은 지정토론에서도 정년연장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랐다.
정진호 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의 구직난·중소기업의 구인난이라는 전혀 다른 현실을 지적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중소기업이 인력 부족으로 정년보다 더 오래 고용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 정년은 이미 업종·규모별로 다르다. 정 연구위원은 “법적 정년이 60세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더 오래 일하고 있는 구조가 중소기업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며 “정년연장 논의는 이 실제 현장을 출발점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용연 한국경총 노동정책 본부장도 혜택이 대기업·공공기관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임금체계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년만 늘리면 기업 부담만 커진다”며, 재고용 과정에서 기업 선택권을 보장하는 별도 특별법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실장은 “고령근로자의 임금이 유지되는 구조가 되면 중소기업은 신규채용을 줄이고 외주·용역 전환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짚었다.
윤동렬 건국대 교수는 정년연장 논의가 청년고용·중장년 고용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 접근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목했다. 윤 교수는 “정년연장이 단순 정년 상향이 아니라 기업의 일자리 창출 여건, 중소기업 인력 수요, 취약계층 보호까지 고려한 정책 패키지가 갖춰져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단계적 65세 정년연장은 인구구조 변화 대응의 핵심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정년제는 30인 이상 기업의 80% 이상이 이미 운영하고 있어 적용 기반은 충분하다”며 임금체계 논란과 관련해선 “특정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일률 삭감하는 것은 명백한 연령차별”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