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쉬는' 청년 40만명…지원금보다 더 필요한 것[전문기자칼럼]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2월 10일, 오후 04:35

[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고용지표만 보면 역대 최고 수준이다. 15~64세 전체 고용률은 70.1%로 정점을 찍었고 실업률도 2.2%에 불과하다. 1%대 성장률과 괴리된 ‘고용호황’이다. 단기 일자리 증가와 고령층 확대로 사회·복지 서비스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그러나 호황의 그늘에서 한숨 쉬는 청년층이 있다.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4.6%로 18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구직을 포기한 청년, 이른바 ‘쉬었음’ 인구는 40만 명대에서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청년 구직촉진수당, 교통비 패스, 월세 지원 등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취업지원과 생활안정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러나 통계청 조사에서 청년 구직자 10명 중 6명이 “지원금은 도움이 되지만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답했다.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금성 지원은 당장의 숨통을 틔워줄 뿐,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 확보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대기업은 구직난인데 중소기업은 구인난인 이유는 이미 명확하다. 대기업 정규직 대비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 수준은 41.5%에 그친다. 제조 대기업 평균 연봉이 7000만원을 넘는 반면, 많은 중소기업은 3000만원대에 머문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로 목숨을 잃은 827명 중 81%가 5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숨졌다.

저임금에 위험한 일자리. 이 구조적 격차가 청년의 ‘대기업 쏠림’과 중소기업의 만성 인력난을 재생산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정년연장 논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정년을 몇 년 더 늘리는 방식은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보호막을 강화할 뿐, 노동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단시간·플랫폼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안전망도 제공하지 못한다. 결국 청년에게 돌아오는 결과는 ‘기득권의 장기 재직 → 신규채용 축소 → 청년 고용절벽’의 악순환이다.

문제는 AI 전환이 이 같은 불균형 구조를 더욱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단순·반복 업무는 빠르게 대체되고, 기업은 채용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인력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올해 대기업들의 신입 공채 축소도 같은 맥락이다. 스탠퍼드·한국은행 분석에서도 AI 노출 직무일수록 젊은 층의 고용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연장을 밀어붙이면 청년이 체감하는 ‘일자리 박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8일 이데일리와 일자리연대가 함께 개최한 ‘2025 제3회 좋은일자리포럼’에서 “AI 전환기 직무 미스매치로 인해 청년 고용 붕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년연장은 엎친데 덮친 격이 될 수 있다”는 이재갑 수원대 석좌교수(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경고는 고용정책 당국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내용이다

2028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본격적으로 줄어든다. ‘AI와 자동화가 촉발한 산업 현장의 변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인력 감소’라는 두 축이 동시에 작용하는 지금이야말로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적기다. 숫자 조정에만 매달린 정년 논쟁을 넘어, 임시방편적 처방을 벗어나, 청년·중장년·기업 모두가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을 설계해야 할 때다.

김대환 일자리연대 명예대표(전 노동부 장관이자 전 노사정위원장)와 정진호 전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 윤동열 건국대 교수,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 황용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등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통일로 KG하모니홀에서 열린 ‘제3회 좋은 일자리 포럼’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각 경제주체의 시각과 현실적 대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