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고통의 21배라는데…연명의료 자기결정권 중요성↑

사회

이데일리,

2025년 12월 11일, 오후 07:31

[이데일리 장영은 안치영 기자] 췌장암 말기로 고통을 겪는 가족을 둔 윤성현 씨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임종을 앞둔 가족에게 의료진이 호흡 저하를 이유로 의료진이 기관삽관을 권하면서다. 회복 가능성이 극히 낮을 뿐만 아니라 의식을 되찾더라도 말할 수 없다는 설명이 뒤따라서다. 윤씨는 “온몸으로 암이 퍼진데다 패혈증까지 겹쳐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며 “기관삽관까지 더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로 환자가 겪는 고통이 대상포진의 21배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신체적 고통을 생각할 때 연명의료가 반드시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사진=게티이미지)
◇ 연명의료 지출↓ 건보재정 2027년 13.3조 ‘+’

11일 한국은행은 건강보험공단과 함께 공동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환자 선호와 의료현실의 괴리, 그리고 보완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명의료’는 회복 가능성이 없고 임종이 임박한 상태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효과 없이 생명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의미한다. 정부는 ‘연명의료결정제도’를 통해 생애 말기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연명 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하는 이들은 65세 이상 인구 대비 16.7%에 불과하다.

한은 연구진이 자체 산출한 ‘연명의료 고통지수’를 보면 연명의료 환자의 평균 신체적 고통지수는 35점으로 단일 질환이나 단일 시술에서 경험하는 최대 통증(10점, 참을 수 없음)의 약 3.5배였다. 특히 고통이 심한 상위 20%에 해당하는 환자의 고통지수는 127.2에 달했다.

환자와 가족의 경제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연명의료 환자가 임종 전 1년간 지출하는 ‘생애말기 의료비’ 평균은 2013년 547만원에서 2023년 1088만원으로 연평균 7.2%씩 늘어 약 2배가 됐다.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약 40% 수준이다.

환자 가족은 의료비 외에도 간병인 고용이나 환자 돌봄을 위한 휴직·퇴직 등으로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겪을 수 있다. 간병인 고용 비용은 월평균 224만원, 일자리 중단에 따른 소득 감소액은 한 달 평균 327만원으로 조사됐다.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환자 본인이 원치 않은 연명의료는 구조적인 불균형을 낳는다는 게 한은 연구진의 지적이다. 연명의료 중심으로 생애 말기 의료 자원이 집중되면서 수요가 높은 △호스피스 △고통 완화 의료 △간병 지원 등의 돌봄 서비스에 투입될 자원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이인로 한은 경제연구원 차장은 “연명의료 과정에는 수술·삽관 등 고강도 침습적 의료행위를 수반할 수 있다”며 “환자에게 심각한 신체 손상과 극심한 통증이 동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도 환자의 고통을 지켜보며 심리적 괴로움을 겪는다”며 “돌봄이 장기화하면 가족의 신체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재정 측면에서도 경제적 효과가 확인됐다. 한은 연구에 따르면 현재 70% 수준인 연명 의료 시술 비율이 15%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2030년 기준 2조 7000억원, 2070년 기준 13조 3000억원의 건강보험 지출이 경감된다. 건보료 추가 인상 등이 없어도 사회적 자원을 환자들이 원하는 생애말기 돌봄에 재배치해 실제 수요에 맞는 의료 지원 정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8월 모친이 돌아가실 때 가족들고 연명의료 실시여부에 대해 많이 논의했다”며 “지나고 보니 모친께도 좋은 선택이었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연명의료 중단 빠를 수록 병원비↓

연명의료 중단 시점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건보공단 조사 결과 죽음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면 비용은 평균 320만원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망 1개월 전부터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최종 한 달간 연명의료비는 5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임민경 건강보험연구원 지속가능체계 부연구위원은 “제도가 본연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임종기로 규정한 연명의료 중단 시점을 좀 더 앞당겨야 한다”며 “환자 본인이 충분한 숙고를 통해 미리 연명의료계획서를 직접 작성해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수요자 중심 의료 지원 정책을 펴기 위해 현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보완·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구체적으로는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홍보와 온라인으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해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 연명의료 중단 여부만 일괄 선택하게 돼 있는 현재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개인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시술을 받고 받지 않을지는 물론, 장기기증 의사와 의료 결정 대리인 지정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한은 관계자는 “연명의료 중단이 의료 행위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완화의료·심리상담·가족지원 등의 ‘생애말기 돌봄체계’ 구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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