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암·중증질환 공무상 재해 인정 확대…심리 검진 의무화해야"

사회

뉴스1,

2025년 12월 12일, 오전 06:00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최근 5년간 공무 중 부상이나 질병으로 입원한 경찰관은 7086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111명의 경찰관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경찰청 마음센터 이용 경찰관은 작년 한 해 1만 7000명에 달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경찰관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위험한 업무 환경에 노출돼 있단 방증이다.

경찰관이 아프면 국민이 받는 치안 서비스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국가가 치안 현장 최일선의 경찰관을 보호하고 그들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때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경찰관이 더욱 건강한 환경에서 자긍심을 갖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책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암 등 중증질환 공무상 재해 인정 확대" "재해보상 제도 패러다임 전환"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암 등 중증질환을 앓는 경찰관의 공무상 재해 인정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창경 이래 암에 걸려 공상·순직으로 승인된 경찰관은 전무하다시피하다. 소방관들처럼 직접 발암물질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게 불승인의 주요 근거이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경찰 업무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물리적인 유해인자 노출 여부라는 협소한 기준에서 벗어나, 장기간의 교대근무와 고도의 직무 스트레스가 암을 비롯한 중증 질환의 주요 원인임을 인정하고, 이를 공상 인정 기준에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경찰 업무는 잦은 야간 교대 근무, 만성적인 스트레스, 민원인 대응 등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로 가득하다"면서 "인사혁신처의 인정 기준을 개혁하고, 경찰 업무 환경과 암 발병 간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독립된 역학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은 2023년 6월 공무 수행과정에서 유해하거나 위험한 환경에 상당 기간 노출돼 질병에 걸리는 경우 공무상 재해로 추정하는 공무상 재해의 인정 특례(일명 공상추정제)를 도입했다. 공무원 직종과 직무, 유해하거나 위험한 환경에서의 근무 기간만으로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성 암, 근골격계 질환 등에 있어선 경찰관이 제외돼 있다.

박종태 노무법인 봄날 대표 노무사는 "경찰 공무원에 대한 공상·순직 인정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경찰관에게 빈발하는 직업성 질환에 대한 공상추정제 확대 또는 직무 특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학적·법률적 전문성이 부족한 경찰관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질병과 직무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건 지난한 과정은 치료에 전념해야 할 경찰관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복잡하고 보수적인 인정 기준을 단순화하고 '직무 수행 중 발생한 모든 건강 악화'를 폭넓게 포괄하도록 공무원연금법 등 관련 법규의 개정이 필요하다"며 "특히 위험직무에 종사하는 경찰관에 대해 위험 가중치를 적용하는 특별 인정 제도를 도입해 현장 업무의 특수성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기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노무사는 "현재 공상·순직 불승인을 다투는 재심(심사)절차는 1년이 소요되는 상황이다. 신청 결과를 받기까지의 수 개월 동안 적절한 치료와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처리기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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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 보장 심리 전담팀 배치…정기 검진 의무화, 기록은 인사와 분리 관리"
경찰관들의 우울증 진료와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치료 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이는 대형 참사 수습이나 참혹한 사건, 성착취물 수사 등 극심한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업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경찰의 보수적인 조직 문화와 인사상 불이익 우려에 발목 잡혀 적극적인 심리 치료가 안 되는 실정이다.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찰과 같은 제복근무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트라우마와 부상에 노출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PTSD와 우울 등 정신건강의 문제에 대한 대비는 충분치 못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제복근무자들은 우울증이 생기거나 자살 위기에 처해도, 몰라서 또는 알고도 편견이나 불이익에 대한 염려로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조직 문화부터 점검하고, 리더가 지속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서 의원은 경찰관들의 정신건강 관리를 건강한 직무 수행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해 상담·치료 기록에 대한 철저한 비밀 보장을 법제화하고,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차별이나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서 의원의 생각이다.

서 의원은 "정신건강 관리는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정기적인 정신건강 검진을 내실화하고, 특히 트라우마 고위험 직군에 대해선 조기 발견 및 즉각적인 전문 개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관들이 눈치 보지 않고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이 의원은 "전국 경찰서 단위에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현장 심리 전담팀을 배치하고, 정기적인 심리 검진을 의무화하되 그 기록은 인사 부서와 분리해 관리해야 한다"며 "외부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해 조직 내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경찰대학교 출신 박세희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모든 경찰관이 매월 1시간씩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화 해야 한다. 1시간의 돌파구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예를 들어 등산 등 운동을 하도록 하거나, 수사와 상관 없는 IT업계 사람들과의 미팅을 잡는 등 새로운 경험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조직의 정치 편향적인 문화 또한 경찰관들의 스트레스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밖에서 봤을 땐 잔혹한 범죄현장만이 경찰관들의 스트레스 원인으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론 정치 편향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작동하고 있어 구성원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다"며 이를 타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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