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25.1.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국내 1인 가구의 수가 800만 가구를 넘어섰다. 지난 9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 가구는 804만5000 가구로 전체 가구의 36.1%를 차지했다. 2021년 700만 가구를 넘어선 뒤 3년 만에 800만 가구를 돌파했다. 연령대별로는 70세 이상(19.8%)과 29세 이하 청년층(17.8%)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고령층·청년층을 중심으로 1인 가구가 빠르게 늘면서 이들이 생활에서 체감하는 주거·경제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주거·복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령층 1인 가구 급증…소득·건강 취약성 두드러져
고령층 1인 가구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들의 생활 여건은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건강 문제와 더불어 고립감이 심화하면서 일상 곳곳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경로당 총무 조용희 씨(88·여)는 "경로당에 할머니들이 20명 정도 되는데, 3명인가 빼고는 다 혼자 산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많으니 할아버지들이 먼저 세상을 떠서 그런 것 같다"며 "나는 집에 영감이 있지만, (혼자 사는 할머니들은) 집에 뭐가 고장 나면 손 닿을 데가 없으니 우리 영감이 이거 해줬으면 하고 바라겠지"라고 웃어 보였다.
이분순 씨(88·여)는 "자려고 누울 때면 자식들도 모르게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그래도 이렇게 경로당에 오면 하루가 금방 가는데 토요일, 일요일은 여기(경로당)에 못 와서 심심하고 해가 아주 길다"고 했다.
같은 날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 모 씨(60대·남)는 "노령연금 27만4000원을 타서 방세 25만 원 내고 전화요금, 병원비까지 내면 남는 게 없다"며 "하도 쪼들려 큰아들에게 두 번인가 10만 원씩 받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털어놨다.
30년째 중구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이 모 씨(72·남)는 "식사는 대충 하지, 먹기 싫으면 단무지 넣고 물 말아서 먹을 때도 있다"며 "혼자 살면 아픈 게 제일 문제인데 다들 견디면서 산다"고 말했다.
수십만 원 월세도 모자라 '관리비 폭탄'…청년 1인 가구 현실
취업을 준비하거나 사회에 막 진출한 청년 1인 가구는 월세·관리비 등 고정 지출이 소득 수준에 비해 크고, 전세 사기 우려와 매물 감소까지 겹쳐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째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회사원 권 모 씨(30·여)는 관리비가 '15만 원'이라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을 믿고 최근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입주 후 확인한 관리비 명세서에는 '30만 원'이 찍혀 있었다. 권 씨는 "월세 부담이 커 전세를 알아봤는데 전세 사기 위험이 큰 데다 매물도 없어 중개인 말을 믿고 서둘러 계약했다"며 "전세로 옮겨도 결국 '관리비 폭탄'을 맞았다"고 호소했다.
취업준비생 김지석 씨(25·남)는 1년 6개월간의 자취 생활을 끝내고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본가로 돌아갔다. 그는 "한 달에 60만 원이 넘는 월세도 그렇고 고정 지출이 감당이 안 돼 다시 돌아왔다"며 "취업을 하더라도 결혼 전까지는 본가에서 살 것"이라고 말했다. 월세를 포함하면 한 달 고정 지출이 120만 원가량이었지만 본가로 돌아오자 사실상 '0원'이 됐다고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청년층이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 씨는 "전세로 구하려다 전세 사기 사건도 있고 전세대출 이자도 적지 않아 월세를 선택했다"며 "취업 전 청년들에게 전세대출 금리라도 완화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씨는 "1인 가구는 관리비 부담이 큰 만큼 관련 지원이 확대됐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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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1인 가구 확산은 이제 '뉴노멀'…공동체 복원 고민해야"
1인 가구의 경제적 여건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지난해 1인 가구의 연간 소득은 3423만 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 소득(7427만 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특히 1인 가구의 절반 이상(53.6%)은 연 소득이 3000만 원 미만이다. 빈곤 문제도 지속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1인 가구는 139만7000가구로 전체 수급 가구(188만4000가구)의 74.2%를 차지했다.
주거 여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1인 가구의 평균 주거 면적은 47.1㎡(약 14평)로 전체 가구 평균인 68.9㎡의 68.4%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출 항목 중에서는 주거·수도·광열비 비중이 18.9%로 가장 높아 상대적인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세대별 1인 가구에 대한 맞춤형 복지 체계 구축이 필요한 것은 물론 공동체 복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층과 노년층에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뉴노멀'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특히 고령층은 기력이 없어 혼자 고독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같은 1인 가구라고 해도 복지 정책의 우선순위에 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승희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인 가구의 급증을 '공동체의 해체 과정'으로 진단했다. 박 교수는 "개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인 고독사, 청년 주거불안, 출산율 급락 등 사회 문제들이 동시에 심화하고 있다"면서 "복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지만 공동체를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가를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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