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외국인의 시선에서조차 "혹독하기로 악명 높은(a notoriously grueling) 시험"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올해 수능 이후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과까지 불러온 한국의 영어 시험…과연 당신은 이 시험을 풀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국 수능 영어의 난이도를 집중 조명했다. 영국 BBC 역시 "한국의 초고위험 입시 시험 책임자, '비정상적으로 어려운' 영어 시험 논란 끝에 사퇴했다"고 전하며, 해당 시험이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데 가깝고 영어 원어민조차 풀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국제적 조롱거리가 된 수능 영어
수능 관련 BBC와 뉴욕타임스 기사 캡처
해외 주요 언론들이 한국 교육에 한목소리로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날카롭다. 이 시험을 과연 고3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상적인 언어 능력 평가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외국 언론에 비친 한국의 수능은 더 이상 학습 성취를 점검하는 평가가 아니라 학생을 과도한 긴장과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 극단적 선별 장치에 가깝다. 이번 사례는 단순히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제적 경고로 읽힌다.
수능 영어 영역에 절대평가가 도입된 후 1등급 비율이 통상 4%를 넘었지만, 이번에는 역대 최저치인 3.11%로 매우 어렵게 출제됐다. '불영어', '용암 영어'라는 말이 시험 직후 자연스럽게 퍼지면서 결국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의 사퇴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난이도 조절 실패라기보다는 수능 시험의 성격까지 논의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문제다.
절대평가의 취지는 학생들의 교육과정 이수 여부와 학습 도달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수능 영어는 그 취지와 정반대로 작동했다. 1등급 비율이 3%대라는 것은 사실상 상대평가보다 더 가혹한 변별을 했다는 의미로, 지금까지 강조한 예측 가능한 교육 정책의 자기부정에 가깝다.
예측 가능성 잃은 수능 시스템과 방치한 정부의 구조적 책임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 및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사태의 본질은 개인의 실수나 일회성 사고가 아니다. 이번 논란은 한마디로 국가 수능 출제 시스템 전반이 구조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음을 드러낸 사례다. 그 책임의 화살도 평가원뿐만 아니라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교육부까지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한 수순이다.
평가원은 늘 말로는 시험 주관기관이자 독립 기관임을 자처하지만, 실상은 교육부의 하위 집행 기관에 더 가깝다. 관리 책임을 함께 져야 할 교육부가 이번에도 "조사하겠다", "시스템을 점검하겠다"는 말로 국가시험에서 반복되는 실패를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혼란이 사교육 시장의 먹잇감으로 반복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수능이 예측 불가능해질수록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해지고, 그 불안은 고스란히 학원과 컨설팅 시장으로 흘러간다. 이번 불영어 논란 직후에도 "이번 시험을 맞힌 곳", "원어민도 틀린 문제를 분석한 강의"라는 자극적 마케팅이 범람했다. 공교육이 흔들릴수록 사교육이 번성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 공생 구조는 영어 시험 전반에서도 반복된다. 대표적 사례가 토익(TOEIC)이다. 한국에서 토익을 주관·운영하는 위원회는 사교육 업체인 YBM으로,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과 시험 대비 교재·강의를 판매하는 기업이 사실상 한 생태계 안에 공존하는 구조다. 이는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하고 시험과 사교육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구조를 방치해 온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수능 영어가 무너뜨린 신뢰 회복에 전력해야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수능 킬러문항 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이번 사태가 더 심각한 이유는 수능 영어 논란 직후 평가원이 출제한 중등 임용시험 수학 문항에서도 오류 논란이 발생해 소송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다. 서로 다른 시험, 다른 과목, 다른 수험생층에서 동시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는 개인의 실수나 일회성 사고가 아니다. 출제·검증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오류가 발생해도 관행적으로 넘어가는 피로 누적 상태에 빠졌다는 신호다.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정부는 늘 같은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 책임자는 바뀌지만, 더 큰 문제인 조직은 그대로 남게 된다. 평가원장은 사퇴했지만, 출제자건 출제 운영 실무자건, 그들을 임명하고 관리해 온 교육부의 정책 책임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된다. 이제는 수능 국가시험을 제대로 샅샅이 뜯어보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점검해 개선해야 한다.
수능이나 임용시험은 변별력의 도구이기 전에 국가 신뢰의 시험이다. 그 신뢰를 무너뜨린 책임은 출제 실무자 몇 명이 아니라 국가와 정부 전체가 책임을 갖고 실효성 있는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불영어', '용암 영어' 사태는 우연이거나 사고가 아니다.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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