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80년인데 아직 야스쿠니에"…유족들 '韓 희생자 합사 철폐' 소송

사회

뉴스1,

2025년 12월 23일, 오후 06:04

23일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제소' 기자회견에서 원고와 법률 대리인, 연대 단위가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2.23/© 뉴스1 권진영 기자

일제강점기 전후로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 합사된 한국인 희생자들의 유족이 "합사를 철폐하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에 해당하는 한국 희생자의 유족 10명과 민족문제연구소·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3일 오후 2시쯤 서울시 서초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송 취지와 개요를 설명했다.

소송 요지는 군국주의 시절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군인·군속(군무원) 동원돼 죽음이 이른 희생자들이 유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것에 대해 책임을 묻고 고인의 이름을 삭제하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와이 진주만 기습공격을 명령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 등 246만6000여명의 영령이 합사된 종교 시설이다. 이곳에 합사된 이들은 '일왕을 위해 희생된 전몰자'로 간주된다.

소송의 피고는 일본국과 야스쿠니 신사다. 유족들은 일본국을 상대로는 희생자에 대한 강제동원·사망과 사후 '전몰자명부' 제공으로 야스쿠니 신사의 무단 합사에 관여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무단 합사로 인한 손해배상과 함께 합사 철폐를 요구했다.

야스쿠니 신사 합사를 철폐는 전사자의 개인 정보를 기재한 문서(제신명표·제신부·영새부)에서 희생자 성명을 삭제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사실상 유골이 위패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원고들은 아버지가 창씨개명된 이름으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일본군 육군에 군속돼 1945년 6월 11일 중국 광시성에서 숨진 고(故) 이사현 씨의 딸 이희자 씨(82)는 "가족에게 왜 아버지의 사망통지를 하지 않았는지, 왜 분명히 가족이 있음에도 가족에게 야스쿠니 합사를 묻지도 알리지도 않았는지 책임을 묻고 싶다""지금 해방 80년인데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씨는 일본 정부가 아버지의 사망과 야스쿠니 합사 정보를 왜 숨겼는지, 유족들이 반대할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숨긴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야스쿠니가 어떤 신사든 나와는 관계가 없다. (합사의 정당성에 대한 것은) 야스쿠니의 주장일 뿐 내가 거기에 따라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며 "고인을 추도할 권한은 가족에게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법률대리인을 맡은 이상희 변호사는 "이 소송은 피해자들을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국가적 기억의 틀에서 분리해 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되돌려 놓는 것"이라며 "정말 일본이 당당하다면 법정에서 나와 이 사건이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다투고 이분들(희생자)을 속히 해방시켜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최근 일본에서는 제3차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 소송이 시작되어 지난 12월 19일 1차 구두 변론이 진행됐다"며 "일본과 병행해 한국에서 오늘 합사 철폐 소송이 제소된 것 자체에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어 "일본 헌법 제20조에는 정교분리 조항이 있지만 정부는 이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일본 사법부도 합사 철폐를 요구하는 한국인, 일본인들이 소송을 제기할 때마다 별문제가 없다며 합법이라는 판단을 계속해서 내려왔다"고 꼬집었다.

야노 국장은 일본 사회와 야스쿠니 신사는 '전사한 병사들이 왜,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야스쿠니에 '영령'으로 합사된 전몰자 중에서는 아사하거나 '포로가 돼선 안 된다'는 군율 때문에 죽음을 강요당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야노 국장은 "이번 소송은 식민지 지배를 당한 유족, 즉 침략 전쟁에 동원된 민족이 야스쿠니란 무엇인지, 합사란 무엇인지를 묻는 소송이 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야스쿠니 무단 합사 피해자의 유족들이 한국 법원에 제기하는 소송은 이번이 최초다. 그간 유족들은 2001년 '재한 군인·군속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시작으로 일본 법원에 제1·2차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 소송을 제기했으나 번번이 패소하거나 항소·상고 시도가 기각됐다. 현재 일본에서는 지난 9월 19일부터 제3차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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