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러너 심진석' 유튜브 영상 갈무리.
마라톤 경기 초반부터 전력 질주하듯 뛰는 '오버페이스'는 심 선수의 전략인데, 체력 안배를 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 선수는 특유의 웃음을 보이며 앞으로도 오버페이스 전략을 유지해 나겠다고 했다. 그는 "저는 오버페이스 해도 후반에 큰 퍼짐이 없다. 중간에 포기하고 페이스 떨어지고 다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올해 시즌을 마무리하며 임한 지난 21일 제35회 진주마라톤대회 때도 전반 하프(21.0975㎞)를 1시간 19분에, 후반 하프를 1시간 20분에 뛰는 등 오버페이스 때문에 후반 기록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고 심 선수는 설명했다.
심 선수는 키 168㎝, 몸무게 54㎏으로 마라토너로서 최적의 체형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168㎝에 57kg이다. 타고난 체형 덕인지 심 선수는 고등학생 시절에도 달리기 시합을 했다 하면 1등을 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 선생님과 친구들이 마라톤을 권유했다고 한다.
심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인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해, 처음 출전한 5㎞ 경기에서 20분 30초를 기록했다. 이후 10㎞, 하프, 풀(42.195㎞) 코스로 점차 거리를 늘려갔다.
올해는 전국 각지에서 열린 마스터스(상급 아마추어 러너) 마라톤 대회에 47차례 나가 그중 33차례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매주 주말마다 대회에 출전한 셈이다. 풀코스 최고 기록은 2시간 31분 15초로, 내년엔 2시간 29분까지 단축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최근 심 선수가 주목받는 건 그의 화려한 마라톤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꿈을 포기하지 않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란 점이 주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시간과 자원이 있지만 노력을 멀리하고 핑계나 변명거리를 찾는 이들에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심 선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건강이 좋지 않고, 그의 형은 뇌전증을 앓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건설현장에 뛰어든 건 심 선수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건설현장의 여러 직종 중에서도 봉급이 많은 비계공(작업자들이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임시 구조물을 설치·해체하는 기술자)으로 일했다.
심 선수는 "집안이 어려웠다. 물류나 일반 생산직은 돈이 안 되는데, 그나마 건설현장은 돈이 좀 되니깐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건설현장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며 2017~18년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건설현장에 몸담고 있었다고 전했다.
'낭만 러너 심진석' 유튜브 영상 갈무리.
심 선수는 비계공 계약 만료 이후 전국마라톤협회에서 일을 돕고 있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1~2차례는 안전화를 신고 언덕 코스 위주의 달리기 훈련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에 뛰는 거리는 총 600~700㎞라고.
심 선수는 '안전화를 신고 뛰면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저는 적응이 됐기 때문에 지금까지 몇 년 동안 큰 부상이 없었다"며 "최근 병원에 가서 검진도 받아봤는데 (발에) 아무 이상 없다고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부상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저의 훈련 방법이나 루틴을 따라 하시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스마트워치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9월에 풀코스 뛴 적 있는데 심박수가 137밖에 안 나왔다. 이게 맞냐는 댓글이 많아서 그냥 안 차는 걸로 됐다"며 "저는 일반 시계로도 (기록) 측정 가능하니깐 (그게 편하다)"고 귀띔했다.
심 선수는 달리는 게 행복하고 즐겁다고 한다. 그는 "힘든 일이나 스트레스받는 일 있을 때 달리면 싹 풀어지는, 피로가 해소되는 느낌"이라며 "달리는 것 자체가 저한테 좋은 것"이라고 했다.
심 선수는 올해의 성과에 만족했다. 그는 "제가 지금까지 마라톤하면서 입상을 이렇게 많이 한 것도 처음이고, 기록 낸 것도 처음이라 2025년이 최고의 해"라고 돌아봤다.
심 선수의 최종 목표는 마스터스 1위가 아니다. 그저 오랫동안 국내외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며 건강하게 달릴 수 있길 바랄 뿐. 그는 "제일 중요한 게 안전과 건강이지, 1등이 목표는 아니다. 부상과 사고 없이 건강관리 잘해서 100세까지 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심 선수의 유튜브 채널은 개설된 지 두 달 만에 구독자가 25만 명에 육박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듯 처음 영상을 접한 이들은 그의 '인생극장' 속에서 적지 않은 자극을 받는다. 심 선수를 보며 새해엔 신발장에서 먼지 쌓인 러닝화를 꺼내신을 러너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주변의 후원과 지원이 늘면서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심 선수는 이달 말엔 케냐로 생애 첫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다. 마라톤 강국에서 엘리트 선수들과 두 달간 함께 하며 얼마나 성장할지, 최근 빚어진 태도 논란들을 거울 삼아 보다 성숙한 30대로 거듭날 수 있을지, 낭만 러너의 2026년이 기대된다.
pej86@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