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전 검찰총장. 2024.9.13/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2024년 5월 2일,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56·사법연수원27기)은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이같이 지시했다. 김 여사의 남편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기 중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시기였다.
그때만 해도 '전담수사팀 구성 지시'는 '약속 대련'으로 의심받았다. 이 전 총장이 대통령실과 미리 조율한 뒤 수사 시늉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 총장이 '윤석열 사단 검사'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윤 정부 초대 검찰총장이었던 그는 실제로 어땠을까? 일단 장악력이 뛰어난 리더였다. 개성과 자존심 강한 검찰 간부들도 그 앞에선 긴장했다. 또 지방에서 발생한 형사 사건의 항소 여부까지 챙길 정도로 만기친람형이었다. 이 전 총장은 출근길 검찰 관련 언론 기사를 모두 읽고 필요한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담당 부서에 일일이 지시했다고 한다.
총장이 세세한 업무까지 관여해 아랫사람의 창의력과 자발성을 억누른다는 지적이 있기는 했다. 다만 이 전 총장의 업무 능력·추진력과 관련해선 이견이 거의 없었다. '모시기 힘든 상사'라고 혀를 내두르는 이들조차 그를 무능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23일 퇴임한 이 전 총장은 최근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했다. 내란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이 기소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공소장(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에 그와 관련된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지난해 5월 15일 박 전 장관에게 동일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이 전 총장에게 용퇴를 요구했으나 그가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개긴다'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아래와 같다.
인사 배경 관련 용산이 4월 말이나 5월 초에 총장의 업무실적, 능력, 자기 정치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용퇴를 요구했으나, 총장이 거부하고 개기기로 하면서…
공소장을 보니, '약속 대련'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작심하고 김 여사를 수사하려 했던 모양이다. 바로 그 때문에 검찰의 김건희 수사팀 지휘부가 물갈이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서글픈 대목은 용산(대통령실)이 이 전 총장에게 '업무실적, 능력, 자기 정치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용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장은 임기 당시 대검 참모진과 함께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하며 시빗거리를 만들기는 했다. 하지만 업무실적이나 능력이 '용퇴'를 요구 받을 정도로 떨어지는 총장이 아니었다.
이 전 총장만의 사례가 아닐 게다. 얼마나 많은 이가 정치적인 이유로 능력과 노력이 평가 절하됐을까. 공직 사회에서도, 국회에서도, 기업에서도, 언론계에서도 자부심 갖고 일하던 사람이 정치적 역학관계나 권력 지형도에 따라 좌천되거나 옷 벗는 일이 발생한다. 그것을 도저히 수용하지 못하겠다면 결국 개기는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지만 이 전 총장은 그랬기 때문에 정권 교체 후 고초를 겪지 않았다. 김 여사 의혹을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혐의로 박 전 장관과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을 비롯해 당시 검찰 간부가 줄줄이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전 총장은 예외였다. 오히려 그는 윤 정부가 가장 힘이 셀 때 성역 없는 수사 의지를 드러낸 총장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12·3 비상계엄 사태 때 윤 전 대통령 또는 계엄 세력의 요구를 거부했던 공직자들만이 특검으로부터 기소되지 않았다. 조희대 대법원장·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개겼던 공직자들만 현재 무사하고, 개기지 않았던 공직자들은 무더기로 기소돼 형사처벌 위기에 처했다. 정상이 아니었던 정부였던 셈이다.
특검 수사가 오는 28일 모두 마무리되는 가운데, 국가 정상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mrlee@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