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엔 꼭"…영하 12도 한파도 녹인 `평범한 소망들` [르포]

사회

이데일리,

2026년 1월 01일, 오전 01:04

[이데일리 석지헌 김현재 기자] 31일 오후 11시 50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 타종을 불과 10분 앞둔 현장은 체감온도 영하 12도에 육박하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인파로 가득 찼다. 두꺼운 외투로 무장한 시민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2026년의 첫 종소리를 기다렸다.

타종 시간이 임박하면서 보신각 주변 혼잡도는 극에 달했다. 특히 종각역 5번과 6번 출구 사이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며 한동안 옴짝달싹 못 할 정도로 정체가 빚어졌다. 인파에 밀려 일행을 놓치는 사례도 속출했다. 한 중학생은 아버지를 놓친 듯 다급한 표정으로 전화를 걸어 “아빠 지금 어디야, 그 쪽으로 못 간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K-새해맞이’를 즐기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경찰의 통제에 따라 이동하면서도 연신 휴대폰 카메라로 현장을 담으며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2026년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열린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서 시민들이 타종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우리 딸 건강”, “내년엔 연애 좀”…두손 꼭 시민들

이날 인파 속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시민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꺼내 놓았다. 6살 난 아들의 목도리를 여며주던 은행원 박종관(42)씨는 “지난 한 해 정치가 어지러워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화물운수업 종사자 나창석(60)씨도 “우리 국민의 저력으로 내년에는 나라가 더 발전하고, 미혼인 세 자녀가 제 자리를 잡길 바란다”며 자녀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미래 계획을 착실히 밟아 나가는 청년들도 입김을 내뿜으며 2026년의 희망을 빌었다. 간호대생 이재건(20)씨는 “내년에는 학점도 올리고 꼭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4월 군 입대를 앞둔 김병훈(20)씨는 “건강하게 복무를 마치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고 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은 외국인도 마찬가지였다. 뉴질랜드에서 온 올리버(52)씨는 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은 대학생 아들, 딸, 아내와 함께 보신각을 찾았다고 했다. 인천 송도 국제기구(UN)에서 근무 중이라는 그는 “2026년은 세상 모든 이들에게 선한 일들만 가득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31일 밤 종각역에 ‘제야의 종’ 행사를 보기 위한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며 한동안 정체가 빚어지기도 했다.(사진=석지헌 기자)
◇인파 몰렸지만 질서 정연…깔끔했던 ‘K-새해맞이’

1일 0시 정각, 보신각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카운트다운이 종로 하늘에 울려 퍼졌다. 마지막 숫자가 끝나고 첫 종소리가 울리자 화려한 불꽃이 터져 올랐다. 시민들 환호성이 영하의 추위를 녹이며 현장을 뒤덮었다. 인파 속에서는 서로 껴안으며 새해를 축하하는 연인들 모습도 눈에 띄었다.

현장 안전 관리는 행사 종료 시까지 긴박하게 이어졌다. 2500여 명의 안전 요원이 20m 간격으로 배치돼 경광봉을 흔들며 인파를 분산시켰다. 경찰은 바리케이드를 이용해 주요 길목을 통제하며 인파 붕괴 사고 예방에 주력했다.

타종 행사가 끝난 뒤에도 성숙한 시민의식이 빛났다. 수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이동하기 시작했지만, 현장은 비교적 질서 정연했다. 곳곳에 배치된 안전관리요원과 경찰들은 경광봉을 연신 흔들며 “천천히 이동해 주세요” “다음 신호에 건너주세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2·29 참사의 슬픔을 딛고 다시 모인 시민들 간절함이 보신각의 깊은 울림과 함께 병오년 새해 하늘로 퍼져 나갔다. 영하의 추위를 뚫고 집으로 향하는 시민들의 뒷모습 위로 다시 찾은 일상의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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