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사람 보는 일…진단·처치로 그치지 않는 이유죠”

사회

이데일리,

2026년 1월 07일, 오후 04:59

[편집자 주] 의정갈등 속 필수의료 분야에서의 의료공백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묵묵히 의료 현장을 지키며 중증 및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한 의술에 땀 흘리는 대한민국 의사들을 조명하고자 ‘신의열전’(信醫列傳)을 연재합니다.
김태정 서울대 신경과 교수가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지난해 9월 말 새벽 20대 초반 여대생이 반복 경련 증세로 A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의식은 없었고 호흡마저 불안정했다. 의료진은 즉시 기관삽관을 시행해 인공호흡기로 기계호흡을 시작했다. 돌아오지 않는 의식을 부여잡으려고 신경과 의료진이 투입돼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뇌전증 중첩증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이때 한 의료진이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문의 김태정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 교수는 의식 회복을 위해 사용 중이던 마취제와 항경련제의 조절을 제안했다. 이어 서울대병원 신경계 중환자실에 병상을 마련해 환자를 전원시키고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확히 열흘 만에 환자는 의식을 되찾았다. 스스로 호흡을 시작해 기관삽관도 제거했다. 말도 할 수 있게 됐다. 현재는 일반 병실로 옮겨져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다. 김 교수는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의료진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며 공을 다른 의료진에게 돌렸다.

◇“골든타임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

김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의 절박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 1년에 열 차례 넘게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응급실을 자주 찾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당직을 설 때면 전자의무기록(EMR)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구급차가 도착하는 즉시 처치가 가능토록 준비하기 위해서다. 때로는 응급실 의료진의 연락을 받기 전 진단·처방을 마쳐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는 “응급실에 오는 주요 신경계 질환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뇌졸중”이라며 “뇌졸중은 골든타임이 생명을 좌우하는 초급성기 필수응급중증 질환이라 빠른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연간 약 15만명씩 발생하는 신규 뇌졸중 환자의 예후 개선을 위해 진료·연구·인식 개선을 넘나들며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뇌졸중 환자 중 골든타임 내에 병원을 찾는 비율은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이 수치는 약 10년째 큰 변화가 없다.

그는 “골든타임 안에만 치료가 이뤄져도 상당수 환자가 최소한의 후유장애만 겪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문제는 병이 아니라 인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도 뇌졸중 환자가 적지 않다”며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극심한 두통, 심한 어지럼증, 발음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면 망설이지 말고 즉시 119에 신고해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 면도, 손·발톱 처리도 직접…“결국 사람을 보는 직업”

그의 책상 서랍에는 미용가위와 면도기, 면도크림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신경중환자 전문가인 김 교수는 “중환자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이라고 설명했다. 의식이 없거나 각종 의료기기에 연결돼 움직일 수 없는 신경과 중환자실 환자들을 그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 직접 돌본다. 진단과 처치에 그치지 않고,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해주며 손·발톱까지 정리한다.

김 교수는 “환자는 누워만 있어도 머리카락과 수염, 손발톱이 자란다.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코로나19 때부터 시작했다”며 “상처가 나지 않도록 면도크림도 쓰고 머리를 감고 싶어하는 환자를 위해 노린스 샴푸도 준비해 뒀다”고 말하며 웃었다.

환자의 몸뿐 아니라 마음의 소리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에서 ‘신의’라는 말이 과하지 않게 느껴진다. 김 교수는 “의사는 결국 사람을 보는 직업”이라며 “환자가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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