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포스터.
그로부터 20년 뒤인 1886년 6월 4일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됐다. 선교의 자유 보장을 두고 입장이 엇갈린 탓에 미국(1882년), 독일·영국(1883년), 이탈리아·러시아(1884년)보다 늦어졌다. 명백한 불평등조약이었고 선교 관련 규정도 추가됐다.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인들은 그동안 탄압받은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공격적인 선교에 나서고 토착 문화를 배격해 곳곳에서 갈등을 빚었다. 제주도에서는 봉세관이 신자들을 고용해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하다가 1901년 이재수의난(신축교안)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홍종우는 1890년 프랑스로 건너가 ‘춘향전’과 ‘심청전’을 번역하고 초대 주불공사 이범진의 아들 이위종은 프랑스 고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독립운동에 쏟아부었다. 궁중 무희 리심(리진)이 초대 주한 프랑스공사 플랑시와 결혼해 프랑스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1차대전이 끝나고 1918년 1월부터 파리강화회의가 열리자 독립운동 진영은 김규식을 파견해 한국대표관을 개설했다. 임시정부 출범 후 이름을 바꾼 파리위원부의 서기장 황기환은 러시아 무르만스크 철도 부설 공사장에서 일하던 한인 37명을 프랑스로 데려왔다. 이들은 홍재하를 중심으로 프랑스한인회를 결성한 뒤 월급을 쪼개가며 임시정부를 도왔다.
광복 후 프랑스는 대한민국 정부를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승인하고 6·25전쟁에 지상군을 파견했다. 입양아도 미국 다음으로 많이 받아들였다. 화가 이응로·김환기, 음악가 백건우·정명훈 등 프랑스에서 활약한 예술가도 수두룩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는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 돌려받는 데 힘썼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된 플뢰르 펠르랭(본명 김종숙)은 아시아계 최초로 장관이 됐다.
2025년 10월 2일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국경일 리셉션에서 로익 에르베 상원부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병준 주프랑스 대사대리는 수교 140주년 기념 로고와 슬로건을 발표했다.(사진=주프랑스 한국대사관)
1851년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가 전남 신안군 해역에서 좌초해 선원 20여 명이 비금도에 표착했다. 중국 상하이 주재 프랑스영사 몽티니는 비금도에서 이정현 나주목사를 만났다. 둘은 송환 협의를 마친 뒤 기념 만찬을 열어 조선 전통주와 프랑스 샴페인을 나눠 마셨다. 몽티니는 옹기로 만든 조선 술병을 가져가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 기증했다.
피로 물든 초창기 교류사 속에서도 양국 관리의 첫 공식 대좌는 훈훈했다. 1970~1980년대 프랑스 예술에 매료된 한국 젊은이들이 프랑스문화원을 즐겨 찾은 것처럼 요즘은 프랑스 밀레니얼·Z(MZ)세대가 K팝과 한식에 열광하고 있다.
불행한 역사를 지울 수 없고 아픈 기억을 잊어서도 안 되지만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두 나라에서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활발한 교류 협력을 통해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